《조용한 흥분》 : 유지혜
노란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시큰둥하게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여행에세이. 제목마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위트있는 '조용한 흥분'. 사실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책만으로 '감성적이다'라는 느낌을 물씬 주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언급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저자 유지혜가 인스타그램스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읽기 전엔 '글이 아니라, 인기가 많으면 책을 쓰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읽었다. 스물셋의 나이에 유럽을 2번 돌고 온 그녀의 여행기를. 깊이는 없고, 그 나이 또래에 내용만 있겠거니 했었는데, 읽다 보니 문체도 감성적이고, 좋아서 어느샌가 빠져들었다. 여행책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도, 여행 에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조용한 흥분>은 괜찮았다. 한껏 치장된 유럽, 그리고 거기에 열렬히 환호하는 저자만 있지 않아서다. 적당한 희열과 낭만이 있고, 고통이 함께 있었다. 그것이 너무 가볍다거나, 또 너무 진지하지 않게 말이다. 처음 보는 독일인의 생일파티 초대를 받거나 디자인스쿨의 전시회를 감상하거나 하는 일들이 관광명소만 도드러지게 찍고 둘러보는 여행 같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짧게 치고빠지는 여행이 아니라 생활자처럼 늦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시장을 둘러보고, 이름나지 않은 카페를 둘러보고, 산책하는 여행을 즐기는 그녀를 보면서 유럽 로망이 다시금 새록새록 생겼다. 저자가 돈이 많아서 떠난 여행이 아니었으니까. 그 나이에 가족에게 짐이 되는 여행은 않겠다며 런던에서 돈을 벌기 위해 직접 판매할 아이템을 고르고, 파는 걸 보니 어린 나이에 더욱 대단하다 싶었다.
읽으면서 '그럼 왜 나는 떠나지 못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답은 용기가 없어서다. 직장을 박차고 나갈 용기도, 외국인 앞에서 영어를 잘 해낼 자신도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고 떠난 여행에서 내가 포기하고 온 것들에 비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적을까 봐. 그래서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거. 하지만, 가보고는 싶다. 아직까진 유럽에 대한 로망을 달랠 수 있을 정도지만, 한 몇 년쯤 뒤엔 참을 수 없을 만큼 쾅하고 터질 거 같다. 그땐 이 책을 떠올리면서 신나게 여행티켓을 질러 버릴지도.
'책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찾아줘》 : 길리언 플린 (0) | 2016.01.25 |
---|---|
《심플을 생각한다》 : 모리카와 아키라 (0) | 2015.12.24 |
《나는 언제나 옳다》 : 길리언 플린 (2) | 2015.12.23 |
《라이프 트렌드 2016》 : 김용섭 (2) | 2015.11.17 |
《홀가분한 삶》 : 이시카와 리에 (0) | 201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