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 히가시노 게이고 25주년 기념작, <매스커레이드 호텔>
웬만한 독자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빨리 신간을 내놓는 소 같은 작가. 정말이지 다작의 아이콘. 한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얼른 그가 낸 소설을 다 읽어버리고, 그가 낸 작품들을 좇는 대신 신간을 기다리는 처지가 돼보겠다고. 하지만 그가 낸 책이 무려 80권이란다. 어느샌가부터 난 그를 이기지 못할 걸 깨달았다. 그의 소설을 쭉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잠깐 다른 작가의 책이 보이고, 그러다 보면 그가 또 신간을 내놓고.. 이런 순환의 반복이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역시 2012년 최신작이라는 걸, 난 무려 4년 뒤에나 읽었다. (아직도 읽지 못한 게 너무 많다) 그의 작품이 워낙 많아 끌리는 제목의 작품부터 읽는 편인데, 얘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제목이었다. (끌리는 제목이라면, 이를 테면 <악의>, <내가 그를 죽였다>, <붉은 손가락>, <졸업> 같은?) 그러다, 서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읽고 싶어 서성이다가 눈에 들어왔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패스, 훈훈한 내용의 이야기보다 말 그대로 '살인사건' 본격 추리를 읽고 싶은 거라 그런 주제의 책은 모조리 패스. 그러다 보니 남은 것들 중에서 끌리는 게 이거였다. 책값도 비싸졌는데, 내용마저 허무하면 어쩌나 싶어 고민하다가 <매스커레이드 이브> 편이 따로 나온 걸 보면 '재미가 있겠다' 싶어 구입했다.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번 사건은 '호텔'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각기 다른 곳에서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직장인, 주부, 교사가 살해당한다. 그들을 엮는 실마리는 사건 현장에 남겨진 수수께끼 같은 숫자 암호문. 경시청의 엘리트 형사인 닛타가 그 암호문을 해독하고, 다음 살인 장소가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살인을 막기 위해 닛타는 호텔리어로 잠입하는데 그 사이 시각장애인 행세하는 노인, 해코지하는 학원교사, 의문의 여성 등이 등장해 용의선상에 오른다. 한편, 연쇄살인으로 규정되던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때, 4번째 범인과 피해자는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동기라도, 그동안의 작품은 이해가 됐는데 이번엔 좀 어거지같아서 아쉬웠지만)
이 책에선 형사 닛타와 베테랑 호텔리어 나오미가 사사건건 부딪히다 의기투합하는데, 호텔 잠입의 비밀이 밝혀질 때 융통성 없는 나오미 때문에 혈압오를 뻔했다. 너무 올곧달까. 그게 그 캐릭터의 매력이지만, 반복적인 '호텔리어의 자세'는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반면, 닛타와 노세는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캐릭터를 좋아했던 나는, 또 하나의 호감 캐릭터의 발견이었던 셈. 이 책이 괜찮으면 <매스커레이드 이브>를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푹 빠져 읽었지만, 같은 호텔 배경이라면 '꼭 읽어야겠어!'는 사실 아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만.
이 책을 탈고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앞으로 똑같은 작업을 한다 해도 이보다 더 잘해낼 자신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신간 때마다 이런다. 그래도 잘 쓰니까 미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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