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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 마스다 미리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 마스다 미리



집에 있으니 할 일도 없고, 오랜만에 도서관에나 가볼까, 하고 찾아갔다. 읽을 책은 언제나 많지만 도서관에서 책장 가득 있는 책을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서점의 매대(광고)와 다르게 공정하게 책을 볼 수 있어서 정말 내 취향을 골라올 수 있다. 이전에 궁금했던 책들이 좀 있어서 리스트업해서 갔다가 마침 내 눈높이와 맞는 책장에 마스다 미리 책이 놓여 있었다. 최근 <내 누나> 속편이 나온 걸 보고 사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이 책도 아직 안 읽었으니 이것부터 읽자, 하고 데려왔다. 



제목도 귀여운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는 160쪽밖에 안 되는 아주 얇은 만화에세이다. 책을 펼치면 시작부터 귀여운 그림이 독자를 맞는다. 수짱 캐릭터가 더 좋긴 한데, 이 그림은 <여자는 언제나 대단햬>에 나오는 초창기 캐릭터를 담은 듯하다. 역자는 유명한 권남희 님이 맡으셨고. 그림도 귀엽지만, 내 마음이 시작부터 동했던 부분은 프롤로그의 일부. 


"머릿속으로 분노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면, 화가 하늘까지 닿을 듯한 꽈배기엿처럼 길어져서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화가 꽈배기엿처럼 길어진다니. 나이도 나보다 더 많음이 분명한 그녀의 이 아이 같은 표현에 새삼 감탄했다. 사물과 감정을 바라보는 눈은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순수한 그녀를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개인적이기는 한데 마스다 미리의 글을 볼 때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어쩐지 두근거려요>로 함께 작업했던, 귀여운 쏠트 작가님). 



프롤로그 부분을 넘기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목차페이지가 나오고, 본격적인 에세이가 등장한다. 이 책은 그녀가 32살에 쓴 초기작품으로, '여자의 분노'라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분노라기엔 사실 너무나 자잘한 이야기들인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별일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공감대를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를 분노 혹은 욱하게 만드는 이들은 '매번 말이 바뀌는 사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 '잘못한 일에 사과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선입견을 강요하는 사람', '용건을 간단히 하지 않고 쓸데 없이 말이 긴 사람', 그리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자신'이다. 가까이에서 이렇게 누구나 느낄 만한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짧게 '콕'하고 포인트를 짚어내는 그녀의 글을 만나면 언제나 즐겁다.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가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내가 당연히 안다고 해서 남에게 '이것도 몰라?'하고 강요했던 것도 같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 나도 생각이 많아서 남이 기다릴까 대충 머리를 하고서 사진 찍은 적도 있었다(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마스다 미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같은 소심한 인간인 것). 

그치만 책의 말미엔 문고본에 덧붙인 그녀의 후기가 있는데, 이제는 소심함과 이별하고 당당해진 그녀다. 나도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이 든다. 얇고, 재밌어서 금방 읽었는데, 빠르게 못 읽는 나도 이렇게 빨리 읽을 정도라니, 내용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좀 들었다. 너무 얇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