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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다 하면서 배우는 거죠. 지영이가 잘할 거예요.” 

아니요, 어머니, 저 잘할 자신 없는대요. 그런 건 자취하는 오빠가 더 잘하고요, 결혼하고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도, 정대현 씨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2016년 10월 출간된 이후, 이 책만큼 사회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이 또 있을까.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오랜 기간 상위권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했고, 먼저 읽은 지인들이 몇 번인가 추천을 해 주기도 했었고, 어느 정치인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지인들에게 전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너무 화제가 되다 보니 언젠가 읽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읽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컸다. 그런 책을 이번에 읽어냈다. 


작가 조남주는 <PD수첩>, <불만제로>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간 일하다 문학동네 소설상을 계기로 작가로 등단했다. 몇 편의 소설을 내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단단히 사고를 친 것. 책 뒤편에는 이 문제작을 한마디로 잘 소개하고 있는데,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한국 여자의 인생 현장 보고서"가 그것이다. 갑자기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본격적으로 남편과 미래의 일을 의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일은 언제까지 하고, 아이는 언제쯤 낳을 것이며, 집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라는 김지영 씨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나보다 빠른 생이니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올시다. 그저 지금까지 왜 그러지 했던 답답함이 아, 그래서였나 하는 기분일 뿐이다. 


삼남매의 둘째인 지영 씨는 운 좋게 태어났고(낙태되지 않고), 딸이라는 이유로 소소한 차별을 당하면서 자란다. 학교에 입학하자 번호는 당연한듯이 남자부터고, 선생님은 남자 짝의 괴롭힘에 힘들어하는 지영 씨를 '좋아해서 괴롭히는 것'이라며 달랜다. 모르는 남학생이 지영 씨를 버스 타고 쫓아왔을 때도 아버지는 행실이 조신하지 못하다며 다그치고, 대학에서 연애를 하다 헤어진 지영 씨를 두고, 선배는 '씹다 버린 껌'이라며 조롱한다. 그 이후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결국 누구보다 평범했던 보통녀 김지영 씨는 친정엄마로, 남편의 전 여친으로 빙의하는 이상증세를 보이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다 읽고 나니 참 씁쓸하다. 이 책이 이토록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는 '김지영=나'라는 공감대가 있었을 테니까. 또 이 책이 이렇게 화제가 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뀌지 않을 걸 알아서. 그래도 혹시나 하고 남편한테는 꼭 읽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