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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위험한 비너스》 - 히가시노 게이고

《위험한 비너스》 - 히가시노 게이고



지난번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 또 다시 소설에 푹 빠졌던 느낌을 되새기고 싶어서 <위험한 비너스>를 읽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이야기의 흡인력이 상당한 작가를 찾기란 힘들다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다가도 보통은 tv를 본다든가, 쓸데없이 인터넷을 계속 해댄다든가 하는 일이 잦은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면 그럴 일이 없다. 빨리 다음 내용이 읽고 싶단 마음뿐이다. 오늘도 크리스마스 이브지만, 따뜻한 이불 안에서 읽는 이 소설책보다 나은 건 없을 것 같다. 


<위험한 비너스>의 주인공은 동물병원 수의사인 데시마 하쿠로. 그에게 어느 날 동생 야가미 아키토의 아내(가에데)가 전화를 걸어와 아키토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그 동생은 사실상 몇 년째 연락이 두절된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 이유인즉 자신의 친부가 죽고, 재혼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생으로, 하쿠로는 대학생이 된 후 그 집을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사건인데, 하쿠로는 그를 찾아온 매력적인 가에데에게 반해, 실종된 동생을 찾는 일에 협력한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재혼한 야스미가의 유산분쟁, 아버지가 최후로 남긴 그림, 어머니의 의문의 죽음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초반에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주인공 하쿠로가 동생 실종사건을 좇으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기억과 진실이 얼마나 괴리가 있는가와 가족과의 비틀어진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려니 했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뇌 의학(서번트 증후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와 별개로 동생의 아내인 가에데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은 하쿠로의 아슬아슬함이 주를 이룬다. 

하쿠로는 겉으로는 올바른 인물의 모습을 하지만, 속으로는 쉴 새 없이 가에데를 탐하는 시선이 그려지기에, '가에데'라는 인물에 반전이 있겠다고 짐작하면서도 읽는 동안에는 꽤 답답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주인공에게서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동생 아키토의 실종이 어머니의 타살로 연결된다거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 드러날 때는 '어떻게 일이 이렇게 돌아가지?' 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내 책을 끼고 있을 만큼 재밌었지만, 그의 수많은 역작들을 생각하면 역시나 이번 소설은 아쉬움이 먼저 떠오른다. 뭔가 무게감 있던 인물들이 후반부에 들어서면 갑자기 본연의 색을 잃고, 급하게 가벼워진다는(명랑해지는) 느낌이었다. 벌려 놓은 것에 비해, 급하게 마무리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