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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끝난 사람》 - 우치다테 마키코

《끝난 사람》 - 우치다테 마키코



지난번에 서점에 갔다가 <위험한 비너스>와 함께 구입했던 <끝난 사람>. 우연히 신문의 북섹션 코너를 읽다가 정년퇴직한 은퇴자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그려냈다는 평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고도 몇 번을 서점에서 마주친 끝에 '이렇게 자꾸 눈에 밟힐 바에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골랐다. 구입하던 날 띠지에 적혀 있던 '히로스에 료코 주연 영화 개봉 예정'이라는 문구에도 혹했던 것도 없지 않다(결국 기사와 띠지 홍보 컬래버에 지고 말았다는 얘기다). 


<끝난 사람>은 워커홀릭에 가까웠던 주인공 다시로 소스케가 정년퇴직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을 그리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을 이제는 미래가 없는, 발전의 여지가 없는 '끝난 사람'임을 줄곧 이야기한다. 도쿄대를 나와 일류 은행에서 동기들을 제치고 촉망받던 다시로. 그러나 말년에 자회사로 좌천되고, 직원 30여 명의 작은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한다. 노후를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될 테지만 그의 방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임원이 되지 못한 채 회사생활을 마무리한 자신의 인생을 씁쓸해 하며, 정년퇴직을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에 비유한다. 


다시로는 다른 노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드나드는 도서관은 절대 다니지 않겠노라며 다짐하고, 헬스클럽과 문화센터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일이 없어서 허전해 하던 그는 결국 고용안정센터에 가서 일을 구해본다거나 관심도 없던 문학 대학원을 목표로 한다거나 뒤늦게 젊은 여인에게 연애의 감정을 품기도 한다. 그러던 중 너무 일이 하고 싶었던 그에게 우연한 기회로 IT 기업의 고문직 제의가 들어오고, 나중엔 사장직까지 수락한다.

그의 욕심은 가족들의 만류를 부르지만,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다시로는 도저히 '일'을 버릴 수가 없다. 자신의 기력을 쏟아붓는 행복한 소모감도 잠시, 예상치 못한 시련이 그에게 찾아오고, 또 다른 방황 끝에 그는 그간의 허세를 버리고, 이전에는 결코 생각할 수 없던 생활을 택하기로 한다. 


저자인 우치다테 마키코는 이 책의 구상을 20여 년 전에 떠올렸다고 한다. 한때 회사에 다녔던 그녀는 정년퇴직을 맞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으나 자신이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미인도, 잘나갔던 사람도 후에는 다 똑같은 일렬횡대의 모습이었단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끝'을 맞이할 것인가가 이 책을 읽을 때의 심정이었다. 타의가 아니라 나의 의지로 마지막을 선택하는 것. 그거면 될 것이다.



"‘심심하다’든가 ‘할 일이 없다’라는 말로 얼버무려 왔지만 소속이 없다는 허전함은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하는 무서운 것이었다. (중략) 유유자적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즉 놀 줄 아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소속감보다는 여유 있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