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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 노라 에프런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 노라 에프런



노라 에프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에세이에서였다(어렴풋이 떠오르는 책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언급은 피하기로 한다). '목주름'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정확한 에피소드는 역시 잊어버렸다. 어쨌든 그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 여자 되게 멋지다는 것이었다. 


다른 얘기인 것 같지만 관련 있는 얘길 하자면, 최근 에세이책 시장은 사이즈가 좀 커졌다(고 한다). 다른 분야의 책보다 많이 팔리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분야의 신간은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감성적이거나 허세만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쓴 글이 아닌데도 왜 읽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다 보니 괜찮은 에세이를 찾는 일이 요즘의 내 미션 아닌 미션이랄까. 그런데 마침 생각난 게 노라 에프런이었다. 


글은 직접 읽어보질 못했으니 어떤지는 몰라도, 일단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말해주는 왠지 모를 믿음이 내겐 있었다. 저널리스트로 시작해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의 직업을 거치면서 그녀는 매번 아주 '잘' 해냈단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유브 갓 메일>과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그녀의 작품이라니 당연히 믿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녀를 떠올린 김에 도서관에 가서 냉큼 책을 빌렸다. 2012년에 출간된 책이라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멀끔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문장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24개의 글은 스타일이 전부 달랐는데,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유머러스했다. 여기에 훗날 자신의 글을 읽을 주변인은 하나도 의식하지 않은 듯한 솔직함엔 두 손을 들 정도였다(이 사람 멋있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글은 '이메일의 여섯 단계', '실패작', '이혼'이라는 제목의 글 3편.  

'이메일의 여섯 단계'는 그녀가 이메일을 처음 접하고서 겪었던 6가지의 변화를 가리키는데, 마지막 다섯 글자 'OO OOO'은 다시 떠올려도 재밌다. 이것 말고 '실패작'과 '이혼'은 고통의 순간들을 그녀가 어떻게 맞았는지 적나라하게 그려냈는데, 그때 그녀가 보인 찌질한 행동들에서 나는 그녀의 나약함을 보았고, 그녀가 더 좋아졌다. 

(왠지 모르게 읽으면서 <쓸 만한 인간>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왜인지 누가 안다면 좀 알려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