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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몽환화》 - 히가시노 게이고

몽환화 - 히가시노 게이고



무려 1월에 샀던 책인데, 이제야 다 읽었다. 중반부쯤까지 읽던 책이었는데, 갑자기 다른 책이 읽고 싶어서 무한정 밀리다가 이번 주말에 순식간에 확 진도를 뺐다. 매번 책꽂이에 꽂힌 이 책을 보면서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 다 읽어서 후련-. 그렇다고 중간에 멈출 만큼 재미가 없던 건 아니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몰아 읽다가 제풀에 지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 <몽환화>는 작가가 무려 10년의 시간을 들여 책을 썼다고 한다. 원래 <역사가도>라는 잡지에 연재를 하다가, 단행본으로 엮으려 했는데 출간이 밀렸고, 그러다가 트릭 자체가 구식이 되어버려 '노란 나팔꽃'이라는 전체 중심 제재만 두고서 싹 전체 원고를 뜯어고쳤다고 한다. 역사 소설은 자신이 없다고 했던 그였지만, 살짝 요소만 가미하는 정도라도 괜찮다는 편집자의 말에 쓴 책이라고. 확실히 역사추리소설이라기엔 애매하다. 


<몽환화>는 시작부터 강렬하다. 프롤로그 1, 2로 나누어서 나오는데, 하나는 어떤 남자가 기다란 일본도를 들고서 출근하는 남편과 그를 마중하는 아내를 칼로 찌른다. 그야말로 무차별 공격. 그것과 함께 나팔꽃 시장에 가족과 함께 간 소년 소타의 일상을 그린다.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든다. 촉망받는 수영선수였지만 수영을 하지 못하게 돼 방황하는 리노가 등장하고, 그녀의 사촌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할아버지가 또다시 죽음을 맞는데, 현장엔 그가 키우던 노란 꽃의 화분이 사라져 있다. 의심스러운 정황에 그녀는 혼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한편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소년 소타는 어느새 대학원생이 되었다. 원자력공학을 연구하던 그는 동일본 지진을 계기로 갈피를 잃고 방황한다. 거기에 자신의 첫사랑과 뜻하지 않은 이별을 상처로 간직하고 있으며, 가족들과도 묘하게 거리를 느낀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자신의 집 앞에서 리노를 만나게 되고, 이 사건이 자신의 가족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느낀 소타는 그녀와 함께 사건을 좇기로 한다. 그 후 형사 하야세와 소타의 형이 합세해 '노란 나팔꽃'을 둘러싼 숨겨진 과거가 드러난다.


노란 나팔꽃의 비밀과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추격하면서 미스터리의 모습을 띠지만 단순한 복수극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지향적이었던 에너지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힘을 잃은 시대의 슬픔에 궤를 같이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라는 소타의 대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사실 등골 서늘한 미스터리를 기대한다면 살짝 아쉽지만,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지난 사건들이 착착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이 크다. 강렬했던 프롤로그와 각각의 인물들이 이렇게 엮였구나, 하면서 다시금 프롤로그를 보게 된다. 적당히 농 익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