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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십자 저택의 피에로》 - 히가시노 게이고

십자 저택의 피에로 - 히가시노 게이고


여름은 아무래도 '장르소설'만 한 게 없어서 최근 몇 권을 질렀다. 그중 가장 먼저 손을 뻗친 게 <십자 저택의 피에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너무 많이 읽어서 이제는 좀 피해야지,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만큼 믿을 만한 책을 또 찾는 건 어려운 일. 읽으려고 산 여러 권의 책 중 부담없이 가볍게 시작하기에 좋고, 왠지 마무리도 깔끔할 것 같아서 이 책부터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 


책리뷰를 쓸 때마다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 작품을 좋아한다. 기본적인 트릭과 드라마틱한 인물 관계를 갖고 있으며, 어쩐지 영화보다는 연극에 가까운 느낌이 그렇다. <십자 저택의 피에로> 역시 1989년 작품이라 그런 느낌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 비슷한 풍으로 <가면산장 살인사건>, <백마산장 살인사건>, <잠자는 숲>이 있다. 


<십자 저택의 피에로>는 말 그대로 십자 저택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십자 저택은 재벌가인 다케미야家의 창업주 고이치로가 지은 건물. 그가 죽은 후 이곳엔 그의 아내 시즈카, 그의 맏딸 요리코 부부, 외손녀 가오리, 그리고 가정부 스즈에와 하숙생 진이치 등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후계자인 맏딸 요리코가 남편과 딸이 보는 앞에서 저택 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 49재 날이 되어 온가족이 십자 저택으로 모이고, 뒤를 이어 인형사라는 남자가 나타나 비극의 현장에 같이 있던 피에로가 실은 불운을 몰고 다니는 '비극의 피에로'라 불린다며 자신이 가져가고 싶다고 한다. 그날 밤, 또 다른 요리코의 남편과 그의 비서가 숨진 채 발견되고, 저택에 있는 사람 중 누가 살인을 한 것인지 수사망이 점점 좁혀오게 된다. 




<십자 저택의 피에로>는 이 책에 기대했던 대로 확실히 속도감 있었고, 재밌었다. 다만, 사건의 결정적인 트릭이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다소 상투적인 트릭이 되었다는 것이 아쉬웠는데, 그 사건의 열쇠를 꽁꽁 숨기고 있다가 단번에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간격을 두고 알려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를 테면 '지문', '나뒹굴고 있었다' 같은 단서들을 조금씩 독자들에게 주입해, 심상치 않은 죽음이었고, 범인은 누구일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그의 소설을 한두 번 읽는 게 아니니)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깊은 여운을 남긴 것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싶다. 여기에 '피에로'라는 존재를 단순히 사건의 소도구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피에로 관점으로 이야기를 맡기고 있어서 극이 좀 더 활기를 띠고, 으스스하고, 묘한 분위기가 더 살아난다(책의 표지나 각 장 앞에 있는 피에로의 이미지랑 매치돼서 더 무섭게 느껴졌는지도). 또, 인물 설명이 앞에 따로 나올 만큼 등장인물이 많지만, 한 인물을 떠올리면 그의 성격이나 태도가 단번에 그려지는 것도 이 작가가 가진 필력이 아닌가 싶다. 이래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