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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작가,책방

속초책방 :: 동아서점 방문기

지난 일요일, 강릉에서 결혼식이 하나 있어서 전날 미리 내려가 여행하는 기분으로 1박을 하기로 했다. 호텔은 저녁에 입실하는 걸로 이야기가 되어서 '서울 → 속초'로 일단 달렸다. 외지인인 나한테 강릉-속초는 아주 가까운 느낌이라서 강릉 갈 거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속초동아서점까지 가자고 채근했다. (알고 보니 1시간여 거리) 

 

속초동아서점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1956년에 개업한 책방이다. 교동우체국 인근에 위치하며, 주차장도 완비되어 있다. 차를 끌고 가서 주차가 살짝 걱정이었는데, 주차장이 이렇게 넓게 있어서 어찌나 편했던지. 서점의 운영 시간은 09:00~21:00, 연중무휴다. 요즘 개성 있는 서점들은 평일 휴무도 있고 해서 여기도 그러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연중무휴라니. 

 

차를 세워두고 들어가다 보니 정문보다 후문으로 들어오게 됐다. 뒷문 쪽에는 각종 참고서들이 가장 먼저 맞아주어서 처음엔 '여기가 그렇게 이름난 서점인가?' 하고 갸우뚱했다. 보통의 서점과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참고서들을 지나 책방 중심으로 발을 옮기니, 다양하게 큐레이션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다음엔 조용히, 그러나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음악이 들렸고, 넓은 공간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서서히 이곳에 적응하면서 이 서점의 매력이 하나둘 들어왔다.  

 

일단 동아서점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유명한 서점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의 규모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넓어서 카메라 렌즈에 다 담지 못했는데, 뒤쪽엔 참고서&소설류, 앞쪽엔 에세이&실용서, 그리고 굿즈 코너 등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사진에 보이는 통창. 이 통창으로 봄기운 가득한 햇살이 들어와서 여유로운 느낌이 물씬 났다. 이 통창 앞으로는, 길게 책상이 배치되어 있고 그 위에 꽃과 식물, 조개 같은 장식품이 올려져 있었는데, 이것 또한 분위기를 살렸다.  

 

책과 함께 보이던 굿즈들. 가방, 노트, 엽서 등 책과 어울리는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다. 여기에 식물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 공간이 삭막하지 않게 만들었다. 

 

서점을 천천히 둘러볼수록 이곳의 큐레이팅이 세심하구나, 싶어서 쉽사리 떠나질 못했다. 책이 많은 편이어서 큐레이팅도 다양했고, 그 가운데 처음 보는 괜찮은 책들도 많이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서 느낀 건 독립서점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대중적인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 

서울은 아예 대중적인 교보문고 같은 곳이나, 너무 모험적인 독립서점이 많은 편인데 이곳은 중간즈음의 느낌. 이런 곳이 동네에 있으면 너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다. 카페 같은 분위기도! (그리고 연령대 다양한 분들이 와서 책 읽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돌아보면서 표지가 예뻐서, 내용이 궁금해서 찍어두었던 책들. <가만한 나날>, <조그맣게 살 거야>,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소설의 판형이 길쭉한 게 특이했는데, 그다지 가독성도 해치지 않는 것 같았던 첫 번째 책, 소노 아야코의 책으로 성장한 책읽는고양이 출판사의 또 다른 작은 책. 내용이 괜찮는데, 교정교열이 말끔하진 않은 것 같아서 사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책은 '나이듦'에 관해 관심이 많은데, 거기다 '지혜롭게'라는 말이 좋아서 궁금해진 책.

 

이렇게 좋은 서점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빈손으로 나오는 건 예의가 아니어서 책을 샀다. 책 같은 물건에 더 이상 욕심 내지 않고, 집에 들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실패(나중에 몇 권 덜어내야지ㅠㅠ). 

몇 주 전부터 온라인서점 카트에 담아두고, 내내 살까 고민했던 마스다 미리의 <걱정 마, 잘될 거야>와 미나토 가나에의 <여자들의 등산일기>! 좋아하는 두 여성 작가의 신간을 결국 손에 넣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책을 샀더니 스티커도 넣어주셔서 기분 더 좋아짐. 거기다 마스다 미리 팬이라는 걸 직감하셨는지, 점원 분이 '마스다 미리 모의고사 문제지'도 챙겨주셔서 기분 날아감. 

자주 갈 수 없는 곳이어서 언제 또 갈지 모르겠지만, 내내 궁금했던 서점의 모습을 이제는 완전히 알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백년가게로도 선정되었다는 것 같았는데, 오래오래 남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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