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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걱정 마, 잘될 거야》 - 마스다 미리

좋아하는 저자 중 하나인 마스다 미리. 이번에도 이봄에서 <걱정 마, 잘될 거야>라는 신간이 출간됐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더 이상 종이책은 사지 않는다고 결심했었는데, 예스북클럽에도 아직 없는 책이었고, 소설은 몰라도 만화를 이북으로 보기엔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좋아하는 '직장 여성'의 주제인 것도 고민에 한몫. 그렇게 살까, 말까 몇 주를 고민하다가 속초동아서점에 들러 빈손으로 나올 수는 없다는 이유로 지르고 말았다. (책과 더해 귀여운 책갈피, 마스다미리 모의고사 문제집까지 얻었으니 됐다)

 

이번 신간은 에세이가 아닌 만화로, 한 직장에서 일하는 세 명의 마리코의 이야기를 엮어냈다. 주인공은 각각 2년차 오카자키 마리코(24세), 12년차 야베 마리코(34세), 20년차 나가사와 마리코(42세). 연차와 연령이 다른 그녀들은 각기 다른 고민과 생각을 품고 매일 직장으로 나서고 있다. 

 

2년차인 오카자키는 아직 회사생활에 적응중. 제일 큰 고민은 회의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회의가 끝나면 '내 의견을 내지 못했어'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상사에게 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 기합을 넣고 일 잘해보이는 '커리어우먼 룩'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서 빨리 선배들처럼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안테나를 빠르게 수신하려고 하는 등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남들에게 다 보인다는 건 자신만 모르는 일. 

 

12년차 야베는 신입사원과 상사 사이에 낀 세대다. 이 시기가 직장인의 전성기. 업무는 프로페셔널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단련이 되었고, 회사 인물의 관계도 빠삭하다. 그래서 일에 대한 사소한 지적은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난다. 또, 뭘 모르는 신입이 일을 시켰을 때 확신에 차 대답을 하면 거슬리고, 상사의 따분한 모습을 보면 그것이 내 미래인가 싶어서 두렵다. 그러는 한편 때때로 회식에서 '꽃' 같은 역할을 하게 될 때의 답답함을 느끼고, 회식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제외한 자리에 낄 때에 자신은 언제까지 초대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자신의 '기한'을 생각한다. 가장 예민하고, 시니컬한 시기. 

 

20년차, 40대인 나가사와는 베테랑 직장인. 회의에서 의견을 말하기 어려웠다거나 점심시간에 트렌디한 맛집을 돌거나 하는 일은 예전에 이미 다 겪은 일. 그래서 후배들을 보면서 조용히 응원한다. 그들이 자신의 답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그렇게 정착한 것이 지금의 자신이다.

그런 그녀의 고민은 업무보다는 후배들과의 관계. 선배다운 선배가 되고 싶지만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매사 조심스럽다. 그래서 회식 자리에 어린 사람들과 앉았다가 괜히 눈치를 보고, 날씨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로 어색함을 풀려는 자신이 한심하고, 고민하는 후배를 보면서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하는 자신이 때로 답답하다.

 

 

평범한 여사무원의 일상을 그렸던 <여자들은 언제나 대단해>와 같은 따뜻하고 밝은 직장 에세이를 기대했던 내게, <걱정 마, 잘될 거야>는 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회사에서 여성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부당함, 경쟁, 부담…. 전작보다 담백하지만 메시지는 깊어졌다 싶다. 그만큼 마스다 미리의 세계가 커진 거겠지.  

 

 

"애써 올라간 산 너머의 경치는 밋밋한 평지였다."
그래도 "쬐끔 열린 창문으로 산들바람 정도는 계속 불어오면서 공기는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