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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방송

《돈꽃》 - 장혁, 이미숙, 이순재, 박세영

《돈꽃》 - 장혁, 이미숙, 이순재, 박세영



2월 3일 드라마 <돈꽃>이 종영했다. 방영 당시 <돈꽃>은 토요일 밤 연속 2회 방영이라는 파격적인 편성이었는데, 마지막회 시청률을 20%를 넘기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사실 처음에 <돈꽃>은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더라도 그저그런 평범한 주말극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커서 1화부터 보진 않았다. 그런데 한창 좋아하는 소현경 작가님의 <황금빛 내 인생>이 지지부진했을 무렵, 기사마다 <돈꽃>이 그렇게 재밌다는 덧글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미 10부는 훌쩍 넘어간 상황. 볼까 말까 하다가 딱 1화만 보자 하고 틀었다가 그날로 7화쯤 내리 꽂혀서 보게 되었다. 



돈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 살지만 실은 돈에 먹혀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라고 소개하는 <돈꽃>은 재벌 청아그룹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을 다룬다. 크게 청아그룹의 창업주 장국환(이순재)의 후계자가 되려는 정말란(이미숙), 장부천(장승조) 모자 vs 장성만(선우재덕), 장여천(임강성)으로 파가 나뉘는데, 여기에 강필주(장혁)는 정말란 모자를 돕고 있지만 실은 자신이 후계자가 되려는 계획을 세운다(혼외자). 



드라마 초반 정말란 모자는 후계자 구도에서 밀릴 위협에 처하고, 강필주는 청아가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정치가와 결탁하라고 조언한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혼인. 이때 장부천의 상대로 오른 인물이 나모현(박세영)인데 그녀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반듯한 인물로, 이들의 계략을 모른 채 결혼하게 된다(강필주도 서서히 그녀에게 빠지지만 복수가 그에겐 더 중요). 이런 연유로 등장인물이 엮이기 시작하고, 이후 청아그룹은 누가, 어떻게 차지할 것인지가 관전의 핵심이 된다. 



<돈꽃>을 보기 전 드라마 제작보고회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당시 PD는 훌륭한 고전에도 막장의 요소는 있다고 말한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왜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드라마를 보고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룹 후계자를 이유로 끊임없이 자식들을 시험하는 부모, 복수를 계획하는 혼외자, 이익을 위한 정략 혼인, 제 손으로 아들의 생명을 끊는 아버지 등 <돈꽃>엔 막장 요소가 다분히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가 없다. 



드라마는 한 편 한 편 영화 같은 우아한 연출로 배우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 길게 끌고 간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방식인데도 인물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느낌이다. 그래서 기존 배우의 이미지는 지워지고, 극중 캐릭터만 살아 남게 된다. 잘 만든 드라마에선 개인적으로 배우보다 극중 이름을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 드라마가 그렇다. 나모현, 강필주, 장부천, 정말란, 장국환…. 배우들이 너무 자신의 캐릭터를 잘 만들어줘서 도저히 대체 배우를 생각할 수 없다. 특히 이미숙. 그녀가 아니었으면 누가 정말란을 했을까 싶다. 6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그런 섹슈얼한 연기는 정말. 



<돈꽃>은 마지막회까지 와서도 몇 번의 반전을 품고 끝까지 예측할 수 없도록 했다. 23화에서 총을 들고 끝나버렸을 때  광고 시간 내내 다음은 어떨지 긴장했던 기억도 있을 만큼. 개인적으론 <비밀의 숲> 이후 가장 잘 짜인 치밀한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이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