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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 히가시노 게이고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 히가시노 게이고




<십자 저택의 피에로>, <기린의 날개>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연달아 읽고, 또 신간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를 집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내용에, 적당한 완성도, 거기에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이전에 읽어서('이브'는 빼먹었지만) 어차피 읽을 거 단김에 지금 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는 마음이었다. 사실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현대문학은 '가가 시리즈' 표지가 좋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올곧은(융통성 없는?) 캐릭터가 그리 마음에 차지 않아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으나 히가시노 게이고라면 그런 것쯤 대수는 아닌 것이다.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는 "원룸에 시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익명의 신고로 감전사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반신반의했던 신고가 사실로 밝혀지고 경찰은 본격 수사에 나서는데, 그때 같은 인물에게서 또 다른 밀고가 들어온다. "12월 31일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가 열리는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에 범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형사들은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시체에 얽힌 진상을 파헤치는 한편, 또 한 팀은 잘생기고 영어가 되는 닛타 형사를 호텔리어로 배치하고, 잠복근무에 돌입한다. 그리고 마침내 파티장에서 가면을 쓴 교활한 범인의 가면을 닛타가 낚아채는 것으로 사건은 해결된다. 이후 범인의 공감이 1도 되지 않는 속사정(?)이 긴 페이지에 걸쳐서 서술된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그다지 마음에 차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읽고 그러기가 굉장히 드문 일인데! 그래서 <매스커레이드 이브>도 건너뛰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두 권이 괜찮아서, 그때의 기억이 좀 무뎌졌는지 이 책을 다시 구입했다. 하지만 초반부부터 이 책은 좀 애를 먹였다. 보통은 상당히 빠르게 극에 몰입되는데, 이건 좀처럼 빠져들 수 없었다. 원룸의 사체보다 화려한 호텔의 면면이 부각되는 것과 비호감 캐릭터들의 등장 때문인 듯하다. 

주인공 닛타 형사가 정의감 강하고, 잘생기고, 예리하다는 건 잘 알겠는데, 좀 가벼운 느낌이 든다. 남의 말에 금방 수긍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는 주인공답지만, 심하게 말하면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줄 놓는 캐릭터처럼 보였다. 나오미는 "호텔리어에게 ‘안 됩니다’라는 말은 금지어예요"라면서 사사건건 잔소리고, 결은 좀 다르지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막말(?)을 일삼는 호텔리어 우지하라도 비호감이긴 마찬가지. 여기에 고객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컨시어지 업무를 하는 나오미에게 이어지는 과한 업무들. 사진과 똑같은 케이크 모형을 만들어달라, 프러포즈 이벤트를 기획해달라.. 사정이 다 있었지만 읽는 내내 혈압이 오를 뻔했다. 소설이지만 너무 한 거 아니냐. 


이후 밝혀지는 반전은 굉장히 꼬았구나 싶어서 흥미롭지만, 너무 소설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체가 발견되는 과정, 평범한 인물이 공범 살해를 계획하는 과정, 다소 안일해 보인다 싶은 범인의 드라마틱한 과거까지. 아무리 봐도 독자가 같이 풀어 낼 수 없는 스토리다(당할 수밖에 없는 스토리). 혹평만 늘어놓고 있지만 이건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고,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접한다면 꽤 만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시리즈는 안 맞는 걸로. 



tmi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호텔 커피는 비싸지만 리필이 무제한된다"는 게 부분이 있다. <몽환화>에서도 그 내용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있길래 작가한테 되게 인상깊었나 보다고 생각.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