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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계속 독신으로 살 거야? - 오카자키 마리

계속 독신으로 살 거야? - 오카자키 마리



어렸을 적 순정만화를 좀 읽었다. 학원물도 뭐 좋았지만, OL이 나오는 건 더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제일 좋아해서 소장까지 하고 있는 만화는 오카자키 마리의 <서플리>. 나중엔 드라마로도 나와서 꼭꼭 챙겨봤을 만큼 (스토리는 달랐지만) 내 안의 명작이랄까. 그러다 최근 갑자기 만화책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카자키 마리를 검색하면서 <계속 독신으로 살 거야?>라는 이 단편집을 알게 되었다. 단편집이니 만화가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부담도 없겠고, 양이 많지 않으니 둘 공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싱글여성'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서 그것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기도 했다.


주문 후 받은 이 책은 역시나 표지부터 그림이 예술이다. 단순히 예쁘다를 떠나서 한 컷을 양쪽에 가득 그린 것들은 정말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넋을 놓고 보게 된다. 거기에 강조와 독백이 적절히 섞여 촌스럽거나 유치하지 않다. 읽어 놓고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오카자키 마리의 그림은 머리에 확 박히는 느낌이다. 


내용은 동창인 36세 싱글여성들의 각각의 일과 사랑. 

그중 마미는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으로 원하는 삶을 손에 넣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서 듣는 얘기는 '언제 결혼하니', '왜 연애를 못하니', '여성으로서 매력이 제로' 같은 것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데려와 그녀를 쑤셔대고, 믿었던 사회제도마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로 인해 자신이 잘못된 길을 택하고 있는 기분만 든다. 평범하게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같이 키우는.. 눈에 그려지는 미래가 없는 막막함은 그녀를 불안과 초조의 늪으로 빠뜨리고, 결국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상대의 한없이 가벼운 "결혼할래?"라는 말에도 흔들리게 만든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이상신호를 눈치채지만, 누구나 그렇지, 라는 위안으로 눈을 감는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알게 된다. '자립'만이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라는 걸 


'결혼하지 않은 것=어딘가 하자가 있는 것'이라는 사회의 시선을 이 만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무시하려도 해도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개개인들도.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는 뻔한 마무리지만, 그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음도 알겠고, 그 메시지가 어떻게 내게 와닿았는가를 생각하면 꽤 괜찮았다. 이 책은 실은 아마미야 마미라는 저자의 에세이가 원안이고, 뒤에 그녀와 나눈 대담이 실려 있어 볼만하다.  



"행복이란 뭘까."

"때때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 일하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 한밤중에 포테이토칩을 먹어치우는 것. 그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손에 넣는 것."



+덧 : 이 책을 읽고 '아마미야 마미'라는 작가에도 호기심이 생겨 검색했다가, 그녀가 자택에서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자살인 듯하다. 몇 개월 전 '죽고 싶어지는 밤의 일'이라는 글도 블로그에 남겨두었으니까. 좋은 책을 만났고, 새로운 저자를 알게 되어 우리나라에 출간된 작품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