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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영화

《베테랑》 : 황정민, 유아인, 오달수, 유해진

《베테랑》 : 황정민, 유아인, 오달수, 유해진

 

그동안 나온 고만고만한 경찰 영화(재미는 있지만 어딘가 아쉬운)인 줄 알았더니 제대로 이 갈고 나온 듯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그동안 시원한 전개, 호쾌한 액션, B급 감성을 담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의 영화를 잘 만들어왔었는데(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베를린 빼고) 이번 <베테랑>에는 그 모든 것이 완성형으로 집약된 느낌이다. 쉴 틈 없는 액션,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인물들의 뚜렷하게 대비된 선악, 그 사이사이에 풍자와 해학이 넘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빨려들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영화의 남은 이야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깝다. 이런 느낌은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었는지 평점도 9점대로 높고, 거대 자본이 들어갔던 <암살>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천만 관객 돌파까지 시간 문제가 됐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마음가짐으로 법을 준수하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신진그룹 재벌 3세로 미안하단 말은 절대 안 하고, 할 일이 없는 절대 갑 조태오(유아인) 감방보내기 스토리다. 연기는 잘하지만 수도 없이 형사 역을 맡은 황정민, 개인적으로 호감은 아닌 배우 유아인, 게다가 연기력도 잘 모르는 장윤주까지 나온다 해서 '으응?'했던 영화. 그런데 의외로 이 세 사람이 영화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바람에 시너지 효과가 났다. 특히 배우가 아니라 모델이기에 기대를 별로 안 했던 장윤주는 연기도 제법 자연스러웠고, 분량도 생각보다 있었고, 몸매도 ㄷㄷ해서 액션이 더 시원해보였다.   

 

 

처음에 우연한 술자리로 유아인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은 황정민. 이후 정웅인의 죽음에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다가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엔 단순 폭력이었던 일이 경찰 살인미수까지 번지고 각종 범죄까지 줄줄이 추가하게 된다. 유아인, 황정민 외에 오달수, 천호진, 마동석, 진경 등 영화의 감초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마구 등장해서 볼맛이 난다. 보면서 속이 뻥 뚫렸던 장면은 부부싸움씬. '쪽팔리게는 하지 말라'고 아내가 경찰서에 찾아와 했던 대사. 그 밖에도 기억 남는 씬은 많다.

 

 

 

유해진도 유해진이지만, 기름기 좔좔, 얄미움x1000이었던 건 단연 유아인이 최고.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니 계급이 분명하구나 싶었다. 정웅인이 아들 앞에 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유아인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따르는 모습은 갑이 갑질을 할 수 있게 하는 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더욱이 그렇게 잡혀 들어간다 해도 죽을 때까지 먹고 살 돈이 있고, 금방 풀려날 테고, 힘 없는 소시민들은 허탈감과 함께 협박 혹은 압박을 받겠지 싶어서 극장을 나올 땐 뭔가 즐겁게 봤는데 우울해진다.  

 

 

수사의 압박 속에서 실제 황정민처럼 해줄 형사는 있을까 싶고, 부정한 돈을 줄 때 거절하는 부부가 있을까도 싶고.. 그런데 몰상식한 재벌은 있을 것만 같고. 비록 영화에서는 유아인이 끝장을 보는 약간 맛이 간(?) 재벌이라서 걸려 들었지 그렇지 않은 재벌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을지 무섭다. 그리고 영화 속에 아파트 광고를 찍는 톱스타의 이중생활도 실제 저럴까 싶어서, 저런 건 그냥 실제로도 모르고만 싶었다. 어쨌거나 <베테랑>은 미친 재벌놈 하나가 얼마나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