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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영화

《악녀》 : 김옥빈, 신하균, 성준, 김서형

《악녀》 : 김옥빈, 신하균, 성준, 김서형



최근에 딱히 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영화가 없었다. 언제쯤 볼만한 영화가 나오려나 싶었는데, 기다리던 <악녀>가 드디어 개봉했다. 김옥빈, 신하균 주연의 <악녀>는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 감독의 신작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관객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더욱이 언론에서는 <킬빌>을 능가하는 액션이라는 추켜세웠고, 김옥빈이 험난한 액션을 대역을 거의 쓰지 않고 직접 해냈다는 비하인드 소식도 전했다. 이쯤되니 이 영화가 어떻길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녀>의 줄거리를 이렇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숙희(김옥빈). 아버지의 복수를 되새기며 사는 그녀에게 나타난 중상(신하균). 중상은 그녀에게 살인병기에 다름없는 훈련을 시키고, 그녀는 점차 강해진다. 그렇게 둘이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안 숙희는 중상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한다. 신혼여행을 떠난 어느 날, 숙희와 함께 있던 중상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라진다. 중상의 부하에게 들은 소식은 그가 죽었다는 것. 그녀는 배후로 의심되는 조직을 찾아가 쳐부수고, 이를 본 국가비밀조직은 그녀를 데려온다. 이때 그녀에겐 이미 중상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출산 후 조직의 임무를 무사히 10년 동안 수행하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얘기에, 훈련을 받고 세상에 나온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현수(성준)와 죽었다고 믿었던 중상. 숙희는 비밀을 간직한 두 남자로 인해 혼란스러운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분노한다. 



줄거리는 하나도 모른 채로, 그저 영화가 좋다는 소리만 듣고 갔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이야기에,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시원한 액션, 거기다 시선을 압도하는 소품과 의상, 새로운 카메라 기법으로 2시간의 긴 시간이 즐거웠다(물론 중간에 현수와 연수(숙희)의 늘어지는 로맨스나 액션의 분량은 좀 더 쳐냈어도 됐겠다 싶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신작을 준비하는 동안 꽤 발전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내겐 별로 호감이지 않았던 배우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었나 싶어서 놀랐다. 진짜 배우구나, 하는 느낌. 신하균은 대사 한마디, 등장만으로도 포스가 장난아니었고, 김옥빈 역시 이 액션씬을 혼자 감당했다 하니 예쁜데, 더 예뻐보였다. 국가비밀조직의 부장으로 나왔던 김서형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도 좋았고, 아슬아슬했던 성준의 스윗함과 코믹함도 영화의 감초 역을 톡톡히 했던 것 같다. 너무 귀여웠던 아역도 빼놓을 수 없다. 



<악녀>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있는데, 일단 처음. 숙희가 어느 조직을 쳐들어가 하나둘씩 제거해나가는데, 세밀한 액션도 그렇고 숙희 시점으로 보여줬던 카메라 기법도 독특했다. 그리고 결혼식 날, 임무를 받은 숙희가 중상을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 웨딩드레스를 입고 총을 든 여자라니, 이 장면에서 진짜 감탄했다. 이때 숙희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느껴지는 중요한 씬이어서도 그랬지만, 전혀 안 어울리는 두 조합의 신선함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버스 추격씬. 차를 타고 버스를 따라가면서 한 손으로 핸들을, 한 손엔 도끼를 든 숙희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절로. 마지막에 울 듯 웃는 장면도 좋았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보다 좀 늘어지는 장면이 있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 한국영화의 틀을 조금 벗어난 느낌이 든달까. 숙희의 뒤틀린 운명에 관한 스토리도 좋았지만, 미장센이 확실히 돋보여서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김옥빈에겐 확실한 인생작이 될 테고, 나머지 주연배우 셋에게도 괜찮은 커리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