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김윤석, 박해일, 이병헌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에, 충무로의 쟁쟁한 배우들을 한데에 모은 대작 <남한산성>. 개봉 당시에 추석 극장가를 휩쓸 영화로 꼽히기도 했고, 언론 홍보도 경쟁작들에 비해 셌다. 감독도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를 연출했었으니 기대감은 더했다. 하지만 막상 개봉을 하니 반응은 시원찮았다. 약체로 보였던 <범죄도시>는 가뿐하게 순익분기를 넘고 있는데, <남한산성>은 손익분기점이던 500만명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했다. 대체 어떻길래? 마침 <남한산성> 표가 생겼는데 안 보기인 아깝고 해서 직접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남한산성>의 러닝타임은 139분이다. 길다, 길어. 자꾸 <범죄도시>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잔잔했다. 그것도 상영시간 내내. 내 인생 최악의 영화라 꼽는 <명량>과 비교한다면 그보다 스토리는 좀 있다 싶지만 너무 잔잔하고 긴 탓에 재미없다는 생각이 온 정신을 지배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함에 온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계속 들썩였다. <남한산성>이 이 정도일 줄이야.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청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 임금과 조정대신들의 47일을 그린다. 명나라가 지고, 청나라가 세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치욕을 견뎌야 한다는 최명길(이병헌)과 오랑캐인 청과 결코 화친을 맺을 수 없다는 김상헌(김윤석)의 갈등이 중심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피튀기는 논쟁을 두고 조선판 '썰전'이라고 명하기도 했다.
매력적인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영화의 실패요인은 여러 가지다. 일단 1. 너무 긴 러닝타임 2. 역사적 사실에 비롯된 굴욕감 3. 무고한 백성들의 시련 4. 1~11장에 이르는 텍스트다. 상영 중에 내내 소제목이 등장해 맥을 끊는가 하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전반적으로 불안과 갈등만 내비치고, 결국 피해를 입는 건 힘 없는 백성들이란 생각에 괴롭다. 또, 굳이 나루랑 칠복이는 왜 나왔나 싶고.
거기다가 배우와 캐릭터가 잘 떨어지는지도 의문이 든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하는 최명길에 이병헌, 세상 고운 얼굴을 한 천민 대장장이 고수. 연기는 잘했지만 몰입은 되지 않았다. 그나마 김윤석과 청나라군은 나았다(김윤석은 정말 뼛속같이 보수처럼 보였던). 영화를 보면서 입소문은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무리 좋은 배우를 갖다 놔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 덧
영화 상에서 자살하는 걸로 나오는 김상헌은 실제 50세를 넘기며 장수했다. 청나라로 넘어가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그를 보고 칭송했다고 하며, 이후 자손들이 그의 뜻을 이었고, 조선 후기 외척가문의 실세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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