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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아웃》 : 기리노 나쓰오

《아웃》 : 기리노 나쓰오



10월 몇 주간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기리노 나쓰오는 내게 작가 이름만 보고 읽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로, 그녀가 쓴 <아웃>은 전 2권, 740쪽 분량의 방대한 추리소설이다. 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추리소설 상을 탔지만 이 작품으로는 '일본 추리소설 협회상'을 수상했다고. 

기리노 나쓰오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오래전부터 <아웃>에 대한 명성은 들어 왔다. 하지만 호흡이 긴 책은 잘 읽지 못해서 비교적 분량이 적은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그로테스크>, <아임 소리 마마>, <잔학기> 같은 책을 골라 읽었다. 그렇게 다른 책을 읽어 나가면서도 아직 <아웃>은 읽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몇 년 만에 드디어 다 읽었네


<아웃>은 도시락 공장에서 일하는 네 여성의 인생 아웃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도박과 여자에 미친 남편을 둔 야요이, 시어머니와 딸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요시에, 허영심에 가득 차 매일 사치를 일삼고 빚을 진 구니코, 소통이 끊긴 가정에서 곧 무너져내려 버릴 것 같은 마사코. 비틀거리면서 그날 하루치의 인생만을 살아가는 그녀들에게, 어느 날 야요이가 남편 겐지를 목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사코는 요시에, 구니코와 함께 시체의 뒤처리를 맡는다. 공장에서는 팀을 짜서 함께 일하곤 하는 사이지만, 우정이라곤 1도 없는 그녀들. 

요시에와 구니코는 돈 때문에 시체를 처리하고, 마사코는 그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여기에 가담한다(뒤늦게 절망으로 가득 찬 인생에서 자유를 갈망하고 그런 것으로 설명되지만). 어쨌거나 야요이의 살인은 완벽한 알리바이로 경찰의 눈을 속이고, 수사의 타깃은 엉뚱하게 사타케라는 남자를 향한다. 사타케는 불법도박장을 운영하는 남자로, 끔찍한 살인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꽁꽁 숨겨온 과거는 야요이 남편 살해 사건으로 드러나게 되고, 몇 년을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자 복수심에 불타 이 네 여자를 쫓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과 닮은 어둠을 가지고 있는 마사코라는 인물에 끌리는 한편 증오도 키우게 된다.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함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한두 권 읽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데 유독 이 책만은 읽기가 버거웠다. 그래서 평소보다 읽는 데에 배의 시간을 더 쓴 것인지도 모른다. 야요이의 살해, 토막 난 시체, 사타케의 황홀경, 네 여자의 비틀어진 유대,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가즈오. 어느 인물 하나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인물들이 나오고, 그 배경도 여느 때처럼 비일상적인 세계다. 가부키초 거리, 대출업, 야쿠자, 도시락공장…. 일상적이지 않은 스토리 탓에 다음이 궁금해 읽으면서도, 대체 나는 이걸 왜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깊은 어둠, 찌는 듯한 더위, 비릿한 냄새 같은 디테일한 묘사는 역시 그녀다웠다. 하지만 오래된 작품이라 그런지, 그녀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이렇다 할 색다름은 느끼질 못했다. 네 여자의 왜곡된 인생이 동명작가의 <리얼월드>를 생각나게 하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