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이토 씨》 : 우에노 주리, 릴리 프랭키, 후지 타츠야
<아버지와 이토 씨>는 예전에 보려고 했었는데, 깜빡했던 영화다. 원작이 따로 있다는 것과 여주인공이 우에노 주리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는데, 그다지 (내가 느끼기에) 반향이 없었던 영화여서 그런지 꼭 봐야겠다는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 영화였다. 주말이지만 추워서 바깥으로 나가기는 싫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무심코 이 영화를 틀었다. 일본 영화답게 정적인, 일상적인 영상이 흘러나왔다. 관심을 크게 두지 않고, 딴짓을 하면서 보는데, 슬슬 본격적인 사건이 하나씩 나오면서 시선을 훅- 하고 잡아끌었다.
<아버지의 이토 씨>는 34세 딸 아야와 54세 딸의 남친 이토가 살고 있는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살게 된 74세 아야 아버지의 이야기다. 40년 동안 교사로 일하다 퇴임한 아버지는 성격이 꼬장꼬장하다. 듣기 싫은 잔소리, 은근한 고집이 트레이드 마크. 그러다 보니 아들네와 같이 살다가 결국 며느리와의 갈등을 겪고, 동거 중인 딸네 집에 들이닥치게 된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등장에 조용하던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아버지를 잠자코 받아들일 수 없는 딸과 그런 그녀와 아버지를 이토가 담담하게 이어준다.
이 영화를 본 관람객이 남긴 평 중 하나는 '별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재밌다'는 게 있다. 나이든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모시기 부담스러워 하는 딸의 이야기는 정말 별일이 아니다. 굳이 영화로 나오지 않더라도,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이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평범한 주제의 영화는 무슨 일인지, 계속 시선을 끌면서, 심지어 눈물까지 쏙 빼놓고 만다. 클라이맥스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부모님이 생각나서 초반부터 눈물이 쏟아진다.
굽은 어깨에 크로스백을 메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아들과 딸의 집에서는 연민과 동정만이 전부인 삶. 영화 속 딸 아야는 그렇게 외면하고 싶지만 한없이 작아진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한다. 특히 밤이 어둑해질 때까지 조용히 벤치에 앉아 초등학교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모습은 담담하되 절절하다.
과하지 않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심리변화가 섬세하게 그려진 수작이다. 이 영화를 왜 이제서야 봤을까, 싶은 마음과 지금이라도 묻히지 않고 누군가 봐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생기는 영화다. 그리고 이 포스팅을 쓰고 나면 엄마아빠한테 전화나 한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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