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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아내를 사랑한 여자》 : 히가시노 게이고

《아내를 사랑한 여자》 : 히가시노 게이고

 

 

 

집에서 읽고 싶은 책이 떨어져 간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보통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가는 편인데, 요번엔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걸 고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히가시노 게이고' 코너로 향했다. 거기서 마음에 든 책 2권을 골랐는데, 하나는 <아내를 사랑한 여자>, 하나는 <학생가의 살인>이다. 

 

그중 <아내를 사랑한 여자>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고른 건 순전히 뒤표지에 실린 책 소개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미쓰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몸은 여자지만 마음은 남자인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스토커를 죽였다는 것. 그리고 그의 아내를 오래 전부터 사랑해 왔다는 고백까지'라는 줄거리와 함께, '인간은 왜 반드시 여자 혹은 남자여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적혀 있었다.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이 책은 성정체성 장애로 고민하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해,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구나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빌린 이후로 출퇴근 시간 그리고 휴일을 함께한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아' 하는 깊은 공허함이 밀려온다. 비극적인 사건의 결말도 결말이지만, 온 생애를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고민해왔던 미쓰키를 비롯한 성정체성 장애를 가진 이들의 고뇌가 느껴져서다. 성정체성 장애를 안고 있는 미쓰키는 부모님이 힘들지 않도록 학생 때는 여자처럼 생활했고, 졸업 후엔 자신이 원치도 않은 여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을 받는다., 이후 여자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결혼과 출산을 하지만 끝내 좌절하고 만다. 겨우 자신을 옭아매던 가정에서 벗어나 신분을 숨기고 자유를 찾아도 그마저 허락되질 않는다. 우연히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미쓰키를 비롯한 같은 고통을 지닌 존재들의 호적 교환 등 비밀은 미쓰키의 동창 데쓰키에 의해 서서히 풀리며 슬픈 결말을 맞는다. 

 

 

책속에 남자와 여성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는 묘사가 나온다. 남성과 여성이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은 연결되어 있으며, 때로는 남성에 가깝게, 때로는 여성에 가깝게, 아니면 아예 정가운데(중성)에 위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성의 구별이, 누군가에게는 끝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굉장한 고통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책에 등장하는 호적 교환은, 남자로 살길 원하는 여자, 여자로 살길 원하는 남자가 자신들의 행복을 찾기 위해 그동안 알던 부모, 친구, 자식과 같은 인간관계도 전부 끊고, 사회 경력을 모조리 버리고, 남의 호적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거다.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고 무수한 것들을 포기하지만, 호적 교환은 불법이기에 언제나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우리 사회의 차별이 성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잔혹한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 사회 속에 나도 한몫을 한 것은 아닐까.  

 

 

또, 이런저런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약 20년 전쯤 출간된 소설인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당시에 성소수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히가시노 게이고가 새삼 더 좋아졌다. 우리나라에선 <짝사랑>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아내를 사랑한 여자>로 재출간했다. 책의 내용을 알기 전에는 <아내를 사랑한 여자> 쪽이 추리소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읽고 나니 <짝사랑>을 버리다니, 과연 원작을 제대로 읽은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원제도 '짝사랑'이다).

책을 읽다가 반가운 장면이 <산타 아줌마>라는 연극의 등장이다.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화 <산타 아줌마>를 읽고 '생뚱맞게 웬 동화?' 싶었는데, 이게 이 책과 연결되는 거였다. 책속에 연극 내용으로 살짝 나오고, 그 내용을 가지고 추후 <산타 아줌마>라는 동화를 출간했단다(출간 순서를 무시하고 뒤죽박죽 읽었더니 이런 재미가!).

어쨌거나 이번 책은 읽으면서도 '아, 옛날 작품이구나'라는 느낌이 물씬난다. 촌스럽다는 건 아닌데 그의 초기작의 작풍이 느껴진달까? 개인적으론 최근작보다 <동급생>, <졸업>, <방과후> 같은 초기작을 좋아하기 때문에 재밌게 읽었다. 아쉽게도 캐릭터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