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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학생가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학생가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 학생가의 살인 표지 너덜너덜

 

히가시노 게이고에 꽂힌 요즘. 읽는 소설마다 평타를 치니 자연스레 그의 책에 손이 뻗고 만다. 지난번엔 <아내를 사랑한 여자>를 읽었고, 이번엔 <학생가의 살인>이다. 게을러서 대출기한을 연장하고, 다시 빌려서 읽었으니 근 3주 만에 읽은 책이다. 책이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고, 중간중간 집중을 안 돼 책을 읽지 않고 건너띈 날이 많아서다. 역시나 후반부쯤 가니까 책을 읽어도 잠도 안 오고, 금세 독파해버렸다. <학생가의 살인>은 최근작인 줄 알았는데, 이 역시 1987년에 출간된 꽤 오래된 소설이다. 오래된 소설을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대사랄까 그런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어서 느끼질 못했다. 뒤늦게 오래된 소설이란 걸 깨닫고 나니 'AI'를 주제로 했던 산업스파이 부분이 걸리긴 한다.  

 

 

앞서 읽은 <아내를 사랑한 여자>와 같이 이 책도 꽤 두께가 있다. 해설까지 읽으면 570p가 넘는다. 양장인데다 책도 좀 무거워서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니면서 힘들기도. <학생가의 살인>은 제목처럼 학생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신학생가가 생기면서 활기를 잃은 구학생가에서 카페에 딸린 당구장 알바를 하며 진로를 고민하는 고헤이. 어느날 그는 연상의 애인인 히로미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그 사건을 쫓아가면서 총 일련의 3개의 살인사건의 전말을 캐게 된다.

 

2개의 살인사건은 연쇄살인으로, 고헤이의 알바 동료였던 마쓰키가 죽음을 맞으면서 시작된다. 비밀의 싸여 있던 그의 신분은 죽음과 함께 서서히 밝혀지고, 학생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산업스파이의 사건이 드러난다. 그래서 중반부에 이르러 서서히 이야기는 정리에 들어간다. 이때 잡힌 범인이 너무 임팩트가 없어 뭔가 히가시노 게이고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 소설은 아니구나 싶은 찰나 사건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연인 히로미에게 숨겨진 비밀이 더 있음을 알게 되고, 1부가 끝나고 다른 형태의 살인사건의 범인찾기가 2부로 떠오른다. 2부를 다 읽고 나서야 모든 정황들이 착착 맞아 떨어지고, 범인을 알았구나 싶으면 또 하나의 반전이 기다린다.

 

 

이 책에서도 그전 책들에서 보였던 은근한 악의가 보인다. 꼭 죽여야만 한다기보다는 죽어줬으면 하는, 범인의 심정도 이해가 되는 악의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도드라진 건 하나의 사건처럼 보이는 살인사건을 2개의 형태로 나눠, 1부, 2부처럼 각각의 범인찾기가 이뤄진다는 것(해설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시도한 새로운 방법이 이거 아닐까?). 1부는 살짝 싱거웠으나 2부는 아무래도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다른 작품보다 주인공의 질질 끌기가 심했다. 나는 범인을 알았고, 정황을 이해했다는 이야기만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범인이 짐작은 가지만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어서 대체 뭔데? 하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개인적으론, 소수성장애를 다뤘던 <아내를 사랑한 여자>보다는 이쪽이 읽고 난 뒤의 느낌이 깔끔하다. 좀 더 세련된 느낌도 들고, 1부 2부의 신선함도 있고. 오래 동안 잡고 읽은 책인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