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간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약속이 있는데 그 시간까지 할일이 없어서 서점에 들러 급 질렀다. 정신을 딴 데로 돌리고 싶어서 소설이 읽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푹 빠지는 글이 필요했다. 이 책보다 더 신간들도 있었는데, 그 책 대신 이 책을 고른 건 빈정이 상해서. 도서정가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보니까 자간을 넓게 해두고, 페이지를 늘리고, 또 책엔 양장을 해서 쓸데없이 가격을 올려서 파는 게 너무 눈에 보였다. 들고 다니기 무거워서 자간 줄이고 가볍게 읽고 싶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양장을 좋아하는 내가 봐도! 그러다가 그나마 책이 얇았던 <비정근>이 눈에 띄었고, 표지 색감도 좋은 데다, 뒷표지에 "비정규직 교사가 비정한 현실에 던지는 돌직구!"라는 문구에 홀려 지른 것이었다.
주인공은 미스터리 작가를 꿈꾸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인 나로, 그가 학교에 부임을 할 때마다 사건사고가 벌어진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진상을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책이다. 여기에 실린 단편은 총 8 작품인데, 2개는 이 기간제 교사 말고, 학생이 주인공시점이 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책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는 '초등학교'이고, 장편이 아닌 단편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무게감은 덜하다. 그치만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비정규직 차별', '왕따문제', '아이들의 상처' 등.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사건의 해결 외에 이 책의 묘미다. (나는 좋았지만 누군가는 사건이 너무 시시해 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로 사건의 구성은 얄팍한 편)
또, 전혀 다른 이야기였는데, 단편집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읽으면서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라는 그의 다른 소설하고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같았다. 사실 그때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그의 편으로 돌아서게 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그 소설 특유의 느낌이 다가왔다.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나, 독소소설 같은 시리즈랑은 별개의 느낌!) 장편보다 단편이 재미가 없으면 더 읽기가 힘든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편이라도 끊기질 않고, 바로바로 읽게끔 된다. 시선을 잡아끄는 그의 필력에 새삼 감탄. 그런데 생각보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치고는 반응이 영- 아닌 것 같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치긴 어렵겠지만, 중박은 치는 작품인데 괜히 아쉽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선 '우라콘'이라는 단편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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