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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하기 힘든 말》 : 마스다 미리

《하기 힘든 말》 : 마스다 미리

 

 

 

원래는 일본어 공부를 하려고 원작부터 구입했지만, 그러려니 진도가 아무래도 나가질 않을 것 같아서 한국어판으로 다시 구매했다. 마스다 미리의 책은 '수짱 시리즈'를 비롯해서 여러 권 가지고 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답게 그림체도 이쁘고, 에세이도 일상적인 소재 속에서 독특한 시선과 유머가 담아 내 이번에도 후회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분홍색의 여리여리한 표지를 달고 나온 <하기 힘든 말>을 얼른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 <하기 힘든 말>이어서 감성적인 책이겠다고 예상을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알고보니 평소 흔히 접하는 말인데도 마스다 미리 입장에서 선뜻 입에 올리기 어려운 말, 시대와 상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말은 젊은이들이 쓰는 '피어스', '개런티'를, 기성세대는 '귀걸이', '원고료'라고만 고집해서 쓴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선뜻 입에 올리기 어려운 말은 '결혼 안 하세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 '요즘 애들은..' 같은 말처럼 상대방이 듣기에 사실은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말들이다.  

 

40대의 마스다 미리의 글이라 몇몇 일화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어떤 단어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혹은 어떻게 이런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하고 놀랐다. 예를 들어 '아줌마'의 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이 한참 어린 지인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말이야'라면서 지칭했는데 어렸을 적이라면 이상하지 않겠지만, 아줌마인 자신이 남을 아줌마라 지칭할 때 이제는 머뭇거려진다는 것이 그랬는데 나도 나이가 들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건강이 유일한 장점입니다'라는 겸손의 표현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부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에 선뜻할 수 없다는 얘기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즘 들어 잘못된 식습관으로 여기저기 아파보니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100% 공감! 

 

그리고 '절친'이라는 부분도 꽤 공감이 되었는데, 어렸을 적이라면 특별한 의미부여라도 되는 것처럼 친한 친구를 가리켜 '절친'이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친구'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하다 라는 것. 나 역시 고등학생 때엔 절친, 베프처럼 굳이 친구들 중에서도 특별히 친한 친구라는 의미로 그런 단어들을 썼는데, 이제는 그런 단어가 친구들을 단계로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 억지로 친한 사이라고 관계를 잡아두는 느낌이라 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의 <하기 힘든 말> 덕분에 내게 하기 힘든 말은 어떤 게 있나 하고 생각해 봤더니 이런 것들이 있었다. 'OO이는 요즘 뭐해?', '언제 밥 한 번 먹자'. 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여전히 취준생인 친구들이 많아 안부를 묻기가 미안해서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말이 쓰기 어려워졌고, 후자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으나 가끔 쓰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말 중 하나다. 하기 힘든 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듣기 싫은 말로는 기성세대에게라면 '옛날에는 안 그랬어', 연인에게라면 '나는 원래 이래' 정도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