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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고교입시》 : 미나토 가나에

《고교입시》 : 미나토 가나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미나토 가나에의 책이므로 바로 빌렸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로 빌려온 책을 쌓아 두고 읽지는 않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의 반납일은 다가오고 이러다간 읽지도 못하고 반납하겠다 싶어 읽기 시작했다. 읽기 전엔 어떤 내용인가 싶어 뒤표지를 살펴봤는데 "그러니까,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는 글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교 입시를 위해 수험준비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흔한 일은 아닌데, 일본에선 드라마나 책에 등장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고교입시>에 등장하는 이치고는 지역 내에서 학업이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공립학교다.  이 학교가 있는 지역은 독특해서 이치고에 진학하지 못하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내내 '멍청하다'는 편견에 시달린다. 그래서 이치고에 떨어지고 더 낮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 사람은 현재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어도 백수인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반면에 그곳에 진학하게 된 사람들은 평생 오만한 태도를 드러내고, 이치고 OB를 자처하면서 고등학교 3년 시절의 영광을 잊지 못한다.

이런 학교를 배경으로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는 벽보가 붙고 입시를 망치기 위한 프로젝트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달려들고, 입시를 무사히 끝내려는 교사들과 대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로 대변되는 동창회장, 현 의원의 어머니도 얽히고, 입시로 인해 가족이 흩어져야 했던 과거를 가진 인물도 등장해 '입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익명성'이란 이름의 폭력도 폭넓게 다룬다. 알고 보면 범인이 의인이었던 결말이 주는 훈훈함도 있다.  

 

 

초반부엔 등장인물이 하도 많아서 누가 누군지 헷갈려 계속해서 앞장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뒤에 역자 후기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 많던 인물이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아 앞장을 들춰보지 않아도 누가 누구인지 딱 그려졌다. 이게 미나토 가나에의 인물 구성력이 아닌가 싶다. 항상 작품에 돌입하기 전에 인물의 이력서를 만든다는 치밀함이란.

 

<고백>, <야행관람차> 이후로 접했던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은 재미는 있지만 어딘가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었는데 <고교입시>는 실망감에서 조금 벗어나게 해준 책 같다. 그리고 악의로만 가득찼던 과거 그녀의 작품들보다 좀 더 따뜻함이 느껴진다. 형을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 드러나는 에피소드는 가슴이 아파서 눈물까지 났다. 전체적으로 적당한 악의와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