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 김래원, 김해숙, 허이재

《해바라기》 : 김래원, 김해숙, 허이재

 

 

2006년에 개봉한, 무려 10년된 영화 <해바라기>를 연휴에 처음으로 봤다. 명작이라는 얘길 주변에서 많이 들었는데, 가족을 소재로 한데다, 느와르 영화라 틀림없이 새드엔딩이려나 싶어 그간 보질 않았다. 그러다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이 영화의 짧은 영상을 봤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옛날에 나왔던 영화가 아직까지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괜찮길래 하는 마음도 있고, 영화광인 아빠가 <해바라기>는 볼만하고, 김래원은 연기를 잘한다던 얘기가 갑자기 연결되면서 봐야지 싶었다.

 

 

영화에선 먼저 짧게 깎은 머리에, 어눌한 말투를 한 김래원이 등장한다. 그는 버킷리스트가 적힌 낡은 수첩을 들고, 김해숙과 허이재 모녀가 살고 있는 허름한 해바라기 식당으로 향한다. 알고 보니 김래원은 한때 주먹으로 지역을 평정했었고, 싸움을 하다가 한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온 것. 친모는 아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김래원과 엮이게 된 김해숙은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기로 하고, 이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김래원은 철없던 시절 싸움만 하고 다녔던 과거를 후회하고, 새사람이 되려고 차근차근 일도 하고, 대학을 가려고 공부도 하고, 술, 싸움, 담배도 끊으면서 소박한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껴가게 된다.

한편, 조폭(김래원과 한때 동료였던)과 시의원은 백화점을 세우기 위해 차례차례 가게들을 인수해나간다. 해바라기 식당 역시 협박으로 찾으려 하지만, 김해숙은 완강히 거절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이들의 음모로, 결국 살해당하는 김해숙의 복수를 하기 위해 미친 개가 되어 뛰어들고, 자신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길게 늘여 줄거리를 썼는데, 새사람이 되려 했으나, 한때 어울렸던 이들로 인해 좌절하게 된다는 전체적인 스토리는 뻔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거부감없이 이야기를 따라가고, 나중엔 김래원이 사는지, 죽는지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지고, 눈물, 콧물범벅이 되는 건 김래원의 연기력의 하드캐리 덕분. 처음엔 낯설었던 목소리도, 어눌한 표정과 몸짓, 어색한 머리도 영화 중반부터는 미치도록 매력적이며, 오태식 그 자체다. 분명 억울하게 맞고 있는 것도, 무시를 당하는 것도, 깡소주를 들이부으며 적진으로 가는 것도 모조리 연기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가 안타까워서 어쩔 수 없게 된다. 영화가 이미 끝이 났는데도 다시 머릿속으로 곰곰이 영화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이런 영화를 이제야 보다니ㅜㅜ

 

 

10년이나 지난 영화를 보면서 관전 포인트는, 지금은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박성웅이나, 김정태, 한정수. 이 사람들이 나오는 줄은 몰랐다가 반가웠는데, 이런 몹쓸 캐릭터를 연기했었다니. 영화가 괜찮아서 <해바라기>에 대해 더 찾아보니, 감독판과 극장판이 따로 나왔고, 김래원은 둘 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과정을 조금 다르게 맺는다고 한다. 내가 본 것은 극장판으로, 싸우면서 불길에 싸여 죽지만, 감독판엔 살아 나오는데 경찰의 제지를 듣지 못한 김래원을 그만 경찰이 총으로 쏴버린다고 한다. 어쨌거나 죽어버리는 오태식. 죽지 않으면 이어질 내용은 옥살이밖에 더 하겠나 싶어 차라리 죽는 게 깔끔하다 싶긴 하다. 허이재는 이후 같은 감독의 영화인 <걸프렌즈>에도 다시 등장해, 감독이 꽤나 아낀 여배우였나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남들이 보라는 영화는 좀 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