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 : 박보영, 엄지원, 박소담
좋아하는 두 여배우 엄지원, 박보영이 나온다기에 기대했고, 또 좋아하는 장르인 공포영화여서 기대했더랬다. 예고편이나 스틸컷만 봐도 굉장히 이미지에 신경쓴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잘 만들었다는 《기담》 같은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개봉 후 속속 사람들의 리뷰가 올라오는데 반응이 영- 아니었다. 그렇게 큰 화제를 몰고 오지 못하고 뒤늦게 보게 되었는데, 왜 그런 뜨드미지근한 반응을 관객들이 보였는지 이해가 됐다.
일제강점기 시절, 몸이 허약했던 주란(박보영)은 경성에 있는 한 기숙학교에 오게 된다. 이 기숙학교에서는 우등생 몇 명을 선발해 도쿄로 유학을 보내주고 있었는데 처음에 적응을 하지 못하던 주란은 연덕(박소담)이 힘이 되어주면서, 점차 기력을 회복해 가고, 도쿄 유학생 예비 1순위로 선발되기도 한다. 그러다 학교에 있던 소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교장을 비롯한 이 학교의 비밀을 알아가게 된다.
이 영화가 공포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던 건, 관객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잡아 과도하게 친절했던 설정 때문은 아닐까. 학생들에게 약을 먹이던 순간부터 생체실험은 아닐까 하고 의심됐던 것이 '역시'로 맞아떨어질 때의 그 허무함이란. 게다가 그 결말을 알기까지 너무 싱겁기도 했고, 교장의 비밀이 겨우 드러났을 때 누가 엔딩을 종용하는 것도 아닌데 일사처리로 처리되어 버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만큼 급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황국신민으로서 당당하게 도쿄에 입성하고 싶다고 외치던 엄지원의 명연기가 오히려 소름이었다.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영화에만 있었을까 싶어서. 사실 내게 처음부터 호감이었던 배우는 아니었는데 여러 차례 영화에 출연해 오면서 자기만의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 이제는 완전 호감형 배우가 된 엄지원. 영화 속에서 연기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고 의상도 너무 좋았는데 영화가 성공했으면 좀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을 텐데 정말 아쉽다.
공포영화였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기억에 나는 장면은 있는데 무궁화를 한반도에 수놓은 장면이 그랬다. '도쿄'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경쟁을 버텨온 소녀들이 사실은 생체실험의 대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분노로 가득차 새로운 교장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복수로 사람의 몸에 밤새 분홍빛 꽃자수를 해놓은 것이다. 이 장면은 무섭다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지를 떠올리면 굉장히 슬퍼지는 장면이었다.
시대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저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할일이 없었던 소녀들의 천진난만함이 조금 슬펐던 영화. 엉성했던 스토리를 뺀다면(이걸 빼고 제대로 된 영화가 있겠냐마는) 이미지로서는 굉장히 좋았는데 그래도 다시 보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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