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 혼나 요코, 타카하시 잇세이

《귀를 기울이면》 : 혼나 요코, 타카하시 잇세이 

나는 내가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영화가 개봉을 했고, 누가 주연을 했고, 어떤 작품이 흥행을 했는지를 관심 있게 보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됐다. 남들 다 보는 천만 영화도 보지 않고, 극장에는 어쩌다 가고, 우연히 튼 영화 채널 앞에서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홱 하고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또 영화를 안 보다 간만에 재미를 되찾았다.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서 혼자 지브리가 만든 <귀를 기울이면>을 봤다. 개봉할 때 소개해주던 기억이 났는데, 그것도 이미 10년 전의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95년도에 개봉한 작품이라니, 참 오래 묵은 영화다. 나는 왜 남들은 이미 다 보고, 잊을 때쯤 찾아 보는 걸까? 

갑자기 <귀를 기울이면>을 보기로 한 건, 익숙한 제목(요새는 여자친구의 노래로 더 유명하지만), 지브리의 작품이라는 것뿐이었다. 지브리가 만들었으니 웬만큼은 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빗나가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면>은 첫사랑의 감정을 처음 알게 된 소녀의 성장을 다뤘다. 중학교 3학년인 시즈쿠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명랑한 보통 소녀. 그녀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도서카드마다 '아마사와 세이지'란 이름이 적힌 걸 아무도 모르게 신경쓰고 있다. 그러다 만나면 아웅다웅 하던 사이인 동창 세이지가, 도서카드의 그라는 걸 알게 되고, 첫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 무렵 시즈쿠는 바이올린 장인으로 자신의 진로를 확고하게 정한 세이지를 보며 자신의 진로를 고민한다. 결국 시즈쿠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써보기로 결심하고, 마음 고생을 하면서도 서툰 소설을 완성해낸다.  

영화가 시작할 때쯤 들려오는 '컨트리 로드' 노래가 좋았다. 거기에 일본의 소소한 거리의 모습이나 가족의 단란한 일상도. 그때부터 이 영화를 보길 잘했구나 싶었다. 20여 전의 영화인데도 그렇게까지 오래돼 보이지 않았다. 영화 자체로만 봐도 중학생 소년소녀의 순수하고,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도 잘 그려져 있었다. 괜히 관심 있는 상대에게 맘에 없는 말로 놀리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해서 초조해하는 것들이. 

게다가 둘의 매개체가 '책'이었다는 것도 이 영화가 좋아진 또 다른 이유다. 같은 책을 읽다가 폴 인 러브한다는 게 얼마나 설레던지. 그건 그렇고 영화 속 짐이 되기 싫다는 시즈쿠나 성적이 100등 아래로 떨어져버려도 자식을 믿고 일단 지켜봐주는 부모의 모습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인 것 같다. 가벼운데, 가볍지 않은 영화다.

 

"시즈쿠를 빨리 보고 싶어서 마음속으로 계속 불렀어. 시즈쿠 하고. 

그랬더니 말이야, 정말로 시즈쿠가 얼굴을 내밀던 걸. 

굉장해,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