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사라졌다》 - 누미 라파스, 마르완 켄자리, 글렌 클로즈
오랜만에 만난 L에게 "<사라진 밤>을 보고 싶은데, 다들 안 보고 싶대"라고 말했더니, 친구가 해준 말. "그거 말고 <월요일이 사라졌다> 봐봐. 그게 대박이야" 그러고선 친구에게 줄거리를 듣자마자, 제대로 영업당해 주말에 <월요일이 사라졌다>를 보았다. 원제는 <What Happened to Monday?>로 '월요일에게 무슨 일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좀 더 관심을 끌기 위해선지 '월요일이 사라졌다'고 바꿨단다. 전자의 제목이었다면 그다지 궁금증이 일지도, 미스터리한 느낌도 덜한데 누가 바꿨는지 잘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배경은 1가구 1자녀 산아제한법을 시행해 인구를 제한하려는 사회다. 그런데 이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곱 쌍둥이가 태어나고 만다. 이들의 출생이 세상에 알려지면 곧장 냉동수면장치로 끌려가야 하고, 이들을 지키기로 한 외할아버지는 정부의 눈을 피해 몰래 키우기로 한다. 그는 손녀딸들에게 각각 '먼데이, 튜즈데이, 웬즈데이, 써스데이, 프라이데이, 새터데이, 선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가상의 '카렌 셋맨'이라는 동일 인물로 살도록 한다. 그리고 외출은 자신의 이름에 맞는 요일에만 허용하고, 그날 일어난 일은 모두와 공유해야 한다고 교육한다. 자매끼리 투닥거리면서도 오랜시간 익숙하게 이 규칙에 적용해온 그녀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먼데이가 사라져버리는데….
L을 믿고 봤던 이 영화는 역시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L이 이야기를 해주기 전에도 줄거리는 정확히 몰랐지만 블로거들의 반응을 보면서 뭔가 괜찮은 영화가 또 나왔구나, 했었는데 정말이었다. 출연하는 배우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시나리오로 영화는 123분의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유전자변형 → 인구증가 → 산아제한 → 인간의 존재의미'까지 단순한 재미 이상의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여성 캐릭터의 현란한 액션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쉼 없이 보여준다. 주인공이 일곱이라 그런지 진행도 상당히 빠른 편이고, 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구구절절하지 않고 임팩트 있게 풀어낸다. 어린 써스데이의 일탈로 모두 손가락을 하나씩 잃었던 장면이 그것.
여기에 1인 7역의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누미 라파스를 비롯, 잠깐 나왔지만 존재감이 강했던 외할아버지 역의 윌렘 대포, 후반부 폭풍 존재감의 마르완 켄자리, 전형적인 정치인을 보여준 글렌 클로즈의 연기는 영화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영화를 본 후에 평점 리뷰를 훑어보았는데, 다들 누미 라파스의 팬이 되었다는 글이 가득할 정도).
'카렌 셋맨'이라는 인물을 위해 매일 같이 원치 않는 옷차림과 메이크업을 하고, 비밀 없이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연인과의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삶을 통해 영화는 단지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살짝 힘이 떨어지긴 하지만, 이런 영화라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cgv 독점만 아니었다면 더 흥행했을 텐데,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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