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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나는 언제나 옳다》 : 길리언 플린

《나는 언제나 옳다》 : 길리언 플린

 

 

남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자살을 위장하려는 여자의 괴기한 이야기를 그린 <나를 찾아줘>는 충격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반전의 향연. 하지만 그 속에서도 깔끔한 리듬을 가지고 전개되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재밌게 보고서 알게 된 사실. <나를 찾아줘>는 원작소설이 존재했으며, 원작은 100주는 가뿐히 넘기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원작을 가지고 작가 자신이 각본을 써나갔고, 그것도 모자라 할리우드에서 각본상을 휩쓸었다는 것. 이후 얼굴도 예쁘장하고, 능력까지 좋은 그녀에게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 모를 일이다. 

 

 

영화를 보고 얼마 안 있어 서점에 들른 일이 있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이었는데, 눈앞에 <나를 찾아줘> 원작이 있기에 읽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단어들이 통통 튀는 것 같은 생생함이 날 것 그대로 살아 있었다. 대개 영화가 괜찮으면 소설에 손이 가지 않는데 이건 영화와 똑같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페이지에 과연 영화만큼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을까 싶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책은 뒤로 밀렸다. 그런데 이번에 길리언 플린의 신간 단편이 나왔다. <나를 찾아줘>는 놓쳤지만, 이건 먼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책이 괜찮으면 <나를 찾아줘>를 사야겠다 라는 결심으로 단숨에 샀다.

 

<나는 언제나 옳다>는 에드거상 최우수 상을 수상한 단편이라는 것으로 홍보를 하고 있었다. 페이지는 96쪽에 불과한데, 짧은 페이지에도 놀라운 스토리구성력을 보인다고 동료 작가(스티븐 킹..), 독자(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가 열변을 토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라는 호기심만 커졌다. 책을 사고 너무 궁금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몇 페이지를 읽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하층민의 삶을 사는 전과를 가진 한 여자가 있다. 매춘부의 일을 하다가 기력이 달려 점쟁이로 직업을 바꾼다. 예지력은 없지만, 거친 삶을 살았던 과거로 인해 사람들의 인상을 보고 재빨리 파악한다. 그런 그녀에게 심상치 않은 부유층 40대 여자가 접근한다. 의붓아들 때문에 괴롭다고 상담을 받다가, 급기야 그녀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의붓아들과 계모의 진술이 엇갈리고,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사건이 빵 터지고 결말을 맞이한다.   

 

페이지 1장만 읽었을 때, 아니 한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도 흡인력이 대단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는 중이었는데, 스티븐 킹이 말한 수사를 줄이고, 능동태를 쓸 것이며 등등의 기본기를 갖춘 게 그녀가 아닐까 싶었다. 한 문장, 한 페이지가 너무 아까울 정도다. 길리언 플린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판에 박힌 말이, 오롯이 와닿는다. (<나를 찾아줘>를 사야겠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짧은 서사에 길리언 플린은 4가지 플롯을 담아냈다고 한다. 분석하면서 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대단하다 정도만 알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열린 결말 스타일이라는 것. 그리고 96페이지를 가지고 한 권을 만들고, 그 가격을 9천원이나 때린 걸 '너무하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단편 소설 하나를 치자면 96페이지가 아닌, 82페이지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그 82페이지도 글자크기를 크게 잡고, 양쪽 정렬이 아닌 거라 보통 소설식 디자인을 따랐다면 더 페이지가 줄었을 거라는 것. 이건 작가가 아닌, 출판사쪽이 왜 이렇게 한 건지 의문이 든다. 굳이 양장을, 굳이 이 만한 두께를 만들어서 해야 했었나 하고. 그리고 적은 페이지의 염려 탓인지 다른 독자의 리뷰가 담긴 소책자를 줬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