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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

성북동, 길상사

성북동, 길상사


 

 

길상사는 국내여행책을 만들면서 그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가까워서 가볼까 하면서 생각하던 곳이었는데, 친구가 '길상사 갈래?'라는 생각지도 않았던 제의를 해와 찾아가게 되었다.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온 뒤, 횡단보도를 따라 건너편으로 간 뒤 마을버스를 타면 바로 앞에 내려다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워서 진즉에 찾아왔어도 될걸 뭘 그렇게 미뤘나 싶을 정도였다. 3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다행히 날이 선선해 걷기 좋았다.

 

| 극락전

 

길상사는 서울에서 고요하게 자리한 곳인데, 몇 가지 일화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길상사는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기생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에게 요정을 여러 차례 시주하겠다고 뜻을 알렸고, 법정 스님은 뒤늦게 이를 받아들여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다. 당시 1천억 원을 호가하던 이곳을 법정 스님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음은 당연지사.

그녀가 이렇듯 배포있게 시주해버린 것은 시인 백석과도 관련이 있다. 김영한은 15세 때 가세가 기울어 팔리듯 혼인을 했으나 남편이 죽고, 조선 제일의 기생이 된다. 이후 시인 백석과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양가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백석은 그녀에게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한다. 하지만 그의 걸림돌이 될까 우려했던 김영한은 끝내 거절하는데, 갑작스런 해방과 전쟁으로 둘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녀는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며 수절했고, 그를 기려 2억원으로 창작과비평사에 백석문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애절한 이야기가 숨어 있어 더욱 애틋한 절이 바로 길상사다.

 

 

 

처음 이곳에 오기로 했을 때만 해도 나의 스트레스가 이토록 넘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일들과 맞물린 길상사 방문은 내게 구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힘이 되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초록으로 물든 나무들, 군데군데 방문객이 쉴 수 있는 자리에, 큰소리 내는 이 없이 모두가 방해가 될까 싶어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배려 가득한 공간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거기다 나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던 친구까지 있으니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 풍경과 돌탑

 

길상사에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더니, 법정 스님의 그림과 책자, 그리고 실제 사용했던 물건들이 정리된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라 했던 법정 스님을 떠올렸는데, 좋은 것을 마음에 담지 못하고, 사진으로 꼬박꼬박 남기는 나를 보며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했다. 

거길 벗어나니 눈앞에 돌탑이 있는 길이 보였다. 이런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간절하게 소원도 빌고, 돌탑도 쌓았다. (제발제발제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친구들은 왜 이렇게 안전하게 쌓으냐고 했지만, 무너지면 소원이 안 이루어질텐데 난 지금 무조건 이뤄져야 된다고.

 

크게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이곳에 도착했다. 탑인데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자였던가. 4마리가 기둥을 받치고 있는데, 두 마리는 교(敎, 배움)를 뜻하고, 나머지 두 마리는 선(禪, 참선)을 뜻한다고 한다.  

항상 느끼는 건데 절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세상의 일들이 다 별일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되게 작고 작은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다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은 느낌. 현실도피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위로가 됨은 틀림없다.

쭉 걷다가 눈에 띄는 벤치에 앉았다. 거기서 가만히 나무도 보고, 건물도 보고, 하늘도 보고, 그렇게 쉬었더니 좋았다. 아무래도 길상사에 또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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