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방황하는 칼날》 : 히가시노 게이고

《방황하는 칼날》 : 히가시노 게이고

 

 

"오히려 법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기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더구나 미성년자인 경우, 어쩌면 교도소에도 가지 않을지 모른다."

 

이번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의 일부다. 그간 사형제도, 양성애 등 사회 문제에 깊이 관여해왔던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소년법이다. 우리나라에선 정재영, 이성민 주연으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아직 보지 않았으나 봐야지 싶다). 내용은 이렇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딸과 살아가는 아빠가 있다. 딸은 제법 사춘기여서 아빠의 관심과 걱정이 부담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불꽃놀이 축제가 있어 유카타를 입고 나간 딸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뒤늦게 딸에게 연락해보지만 연락은 닿지 않고, 이후 행방불명됐던 딸은 강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애지중지했던 딸의 죽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아빠. 그런 그에게 두 명의 범인을 알려주는 전화 한 통이 날아든다. 무작정 찾아간 범인의 집에서 본 끔찍한 동영상. 그것은 짐승이나 다름 없는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는 딸의 모습이었다. 충격에 휩싸인 그는 복수를 다짐한다.

 

 

여기서 굳이 아버지가 범인을 직접 처단하려는 이유는 범인들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소년법에 의하면 만 20세인 이들은 갱생의 이유를 빌미로 죄가 가벼워져 긴 형량을 받지 않는다. 때문에 범인들의 유희에 안타깝게 죽임을 당한 딸의 복수를 직접하려는 것. 단숨에 피해자에서 피의자가 된 아버지, 그리고 더 이상의 범죄를 막아야 할 의무를 가진 경찰, 과연 지켜줘야 하는가 의문이 드는 범인들. 이 사이에서 독자들은 정의와 법은 무엇인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도 '소년법'을 두고서 독자들이 어느 편에도 설 수 있게끔 양쪽의 의견을 팽팽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그래도 법이 있는데 직접 복수를 한다는 건 법을 무시하는 처사다' VS '내 자식이라면 그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라고.

읽으면서 소설이라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복수를 바랐다. 후에 복수가 아닌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게 됐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의 몇몇 작품을 놓고 봤을 때 이 책은 쏘쏘.

시작은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독자의 시선을 확 잡아끌고, 재밌어서 집에서도, 밖에서도 계속 들고 다니면서 읽긴 했지만 결말은 충분히 예측가능했고, 때로는 너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서 멋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년법 외에도 미디어의 역할을 비판하는 장면이나..) 게다가 펜션의 그 여인은 약간 어거지 캐릭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나마 여느 때처럼 끝을 그냥 내는 게 아니라 약간의 변주를 준 건 그 특유의 잔재미. 이것 역시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이긴 했으나 생각지 못했던 순간에 훅 들어오는 반전은 좀 좋아해서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쓰렸던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