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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라는 부제를 단 <죽음의 수용소에서>.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 정유정이 힘들었던 시절,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간 걸으며 이 책과 함께 했다는 얘길 들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묵묵히 길을 걸어나가면 어떤 생각이 들까, 게다가 그 책이 생존과 관계된 책이라면?' 이런 물음이 내 안에서 샘솟자 단번에 이 책이 궁금해졌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생존과 경쟁이라는 현대 사회의 키워드 속에서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안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읽은 듯해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저자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경험과 관찰을 다룬 1부, 수용소 생활을 통해 구축한 자신의 이론(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이 담긴 2부, 그리고 3부는 추후에 추가된 것으로, 학회 발표에서 쓴 비관 속에서의 낙관이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문장 하나하나가 묵직한데,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예시도 충분하고,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도 한몫한다.

 

 

빅터 프랭클은 단순히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인물이 아니라 심리학에서 꽤 의미 있는 인물이다. 심리학의 제1학파(프로이트), 제2학파(아들러)를 이은 제3학파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에서의 의지'를 강조한다.

 

책은 그가 수용소에서 겪었던 체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던 열차 안에서 아우슈비츠라는 팻말을 보고 절망하는 그, 그리고 사람들. 순식간에 현실과 동떨어져 밤낮으로 얻어맞으며, 죽기 직전까지 노동을 강행하고, 어느 것하나 소유하지 못한 헐벗은 몸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이때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절망의 가운데서 사람들이 어떤 심리상태를 갖게 되는지 관찰하게 되는데, 이는 시기에 따라 3가지로 나뉘게 된다. 1) 수용소 입소 시기(충격과 망상의 단계) 2) 수용소 적응 시기(고통에의 무감각), 3) 석방 시기(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1)은 처음 수용소에 입소한 시기로, 이때 사람들은 충격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러면서 이 고통은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없는 일명 '집행유예 망상'을 보인다. 2) 시기에는 짐승의 세계와 다름없는 수용소 생활에 적응하는 단계로, 이때에는 동료의 죽음도, 어린아이의 아픔도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 못한다. 살아 있으나 살지 못한 것이나 다름 없이 그저 눈앞에 빵, 수프가 전부다. 윤리도 여기선 힘이 없다. 그러는 한편, 이 가운데서도 삶의 의미를 주는 건 자연과 사람임을 깨닫는다. (놀랍게도 수용소 안에는 예술도 있고, 농담도 있었다) 3) 석방된 시기에 사람들은 고통이 끝나고 자유가 찾아왔음을 안도하지만, 자신이 수용소에서 생각했던 삶은 없다. 안락한 집도, 사랑하는 가족도,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이도 없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이 무의미한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되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이때 삶의 의지를 되찾아 주는 일이 중요한데, 그것은 미래에의 희망이다.

 

 

2부부터는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로고테라피'의 이론의 설명이다. 사실상 체험 수기 부분에서도 그의 이론을 접할 수 있는데, 친절하게 한 번 더 설명해준 셈이다. 프로이트 학파는 '쾌락 의지', 아들러 학파는 '권력 추구의 의지'라면,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찾는 의지'에 의해 인간이 삶을 유지한다고 본다. 마지막장 3부에선 그의 이 이론을 학회에서 발표한 '비관 속에서의 낙관'으로 맺는다. 신기하게도 20세기에 논의된 내용이 현대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더러는 혼자서 고민한 결과 끝에 얻었던 해답들이 저자의 이론과도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내 짧은 소견이 긴 사유를 통해 탄생한 이론과 맞닿아 있다니 영광이다. 인생에서 기대고 싶은 철학이 필요할 때 읽어봄직하다.

 

 

기억에 남는 구절

19p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121p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보이는 심리적 반응은 어떤 물리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단순한 표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면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178p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