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어쩌다 어른》 : 이영희

어쩌다 어른》 : 이영희

 

 

예전에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하늘색 예쁜 표지와 '낸들 어쩌리, 살다 보니 이런걸'이라는 듯한 <어쩌다 어른>이라는 무심한 제목을 한 에세이를 발견했다. 오호- 이런 책도 나오는 구나 싶었지만, 어쩐지 사게 되진 않았고, 시간이 흘렀다. 뒤늦게 도서관을 갔다가 또 이 책을 보게 되어 이젠 읽어 볼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제는 '나만의 잉여로움을 위한 1인용 에세이'. 만화책을 쌓아놓고, 귤을 까먹던 것처럼 이 책도 혼자 침대에 누워 한 편 한 편 읽으면 딱 좋을, 에세이였다.

  

| 만화가 천계영의 추천사!

 

이번에 읽은 <어쩌다 어른>은 1년 10개월 동안 신문에 실렸던 그녀의 칼럼을 모아 책으로 낸 것.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면서 보통 칼럼에는 쉽게 볼 수 없는 만화, 드라마, 아이돌을 언급하며 자신의 취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이었다. '호타루의 빛'을 언급하며 아야세 하루카나 건어물녀를 얘기한다거나, 일드를 좋아했던 구남친의 여파로 주말마다 일드를 몰아보다 일본문화를 습득하고, 급기야 SMAP에 빠져서 6개월간 영상을 밤낮으로 봤더니 일본어 자연습득이라는 놀라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그녀의 에피소드는 일본문화에 비교적 관심이 많은 내겐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잠깐 읽었을 뿐인데도 만화와 아이돌을 향한 덕후기질이 물씬 느껴져 '스고이!'가 절로 나오는 그녀. 더욱이 이렇게 푹 빠져버린 대가로 기어코 일본행 티켓을 끊고 일본까지 다녀왔다는 얘기엔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읽는 내내 자학과 자부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유머를 선사하는 글이 꾸밈 없이 솔직하다. 맘에 들어서 작가가 누군지 찾아봤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아는 거라곤 달랑 이름 뿐. 이 책 외에 다른 책을 낸 게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가 구입할 의도도 있었건만 한 권만 낸 듯싶었다.  

 

글을 읽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직장 생활이 힘들던 그녀와 회사에서 묵묵히 잘 버티던 선배의 이야기. 어떻게 하면 잘 버틸 수 있나에 대한 물음에, '직장에서의 나와 일상의 나를 분리할 것'이라고 했던 부분. 회사에서 일을 잘하건 못하건 진짜의 나와는 다른데 사람들이 직장에서의 커리어랄까 그 부분에 자신의 가치를 함께 매기기 때문에 버티기 힘들어진다는 것.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때 다녔던 회사에서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결국엔 오래 있는 사람이 (그 회사에선) 일을 잘하는 사람이야"라는 말. 이 말은 계속 목에 가시처럼 남았지만, 결국엔 그 회사를 나와버렸다. 그곳에서 일 잘하는 타이틀을 얻는 게 내겐 별로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책에 읽었던 부분이랑 같은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냥 생각이 났다.  

 

| 귀여운 일러스트도 가득,

 

그건 그렇고, 글도 글이지만 이 책을 조금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준 건 귀여운 일러스트. 지금 작업하는 책 덕분에 알게 된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를 떠올리게 하는 둥글둥글 살집 있는 캐릭터다. 눈 크고, 피부 하얗고, 오밀조밀한 캐릭터가 아닌 게 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지 않나 싶다. 색감도 따뜻하고, 간혹 촌철살인마냥 한마디 문장도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읽으면서 비슷하다 싶었던 책은 강세형의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감성은 비슷한데 이쪽이 유머는 강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