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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 이다혜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 이다혜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는 우연히 얻은 책이다. 자주 가는 온라인서점에서 신간이벤트에 응모했다가 특출나지 않은 운빨에도 불구하고 손에 넣었다(감사하다). 이벤트에 참여할 때에는 보통 책에 대한 짧은 기대평을 달아야 한다. 나는 '여행에세이라서 한 번, 이다혜 작가님이라서 또 한 번 흘깃하게 되었노라'고 적었다. 일말의 거짓도 없지만,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사실 이름은 적잖이 들었지만, 저자의 다른 책은 애석하게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출간된 책들의 존재를 알고 있고, 북칼럼리스트와 씨네21 기자로 활동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책만 읽지 않았다 뿐이지 계속 궁금해했던 건 사실이다. 



당첨 사실을 알게 되고, 며칠 후 책은 집으로 도착했다. 서평마감날이 언제더라, 하고 찾아보니 8.17(오늘)일이었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탓에 그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책을 시간에 쫓겨 읽어야 된다는 사실이 불편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하며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쓴다고 소문난 저자라 기대가 컸다.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글은 재밌었다. 흔히 마음에 차지 않는 책을 만나면 후반부를 읽다가 '이 책이 언제 끝나지?'하고 생각하게 된다. 끝이 궁금해서 멈출 수도 없고, 지금까지 읽은 것도 억울하고. 그런데 이 책은 뒤로 갈수록 더욱 괜찮아졌다. 저자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다음은 어떤 여행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하고 고조되었다. 그것을 충족시켜줬고. 



저자는 영화기자로 일해온 만큼 적잖이 많은 여행을 다녔고, 때로는 충전을 위해, 때로는 단순한 일탈로 계속해서 떠났다. 덕분에 여행지가 다채로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디어디를 다녀왔어'라는 자랑기는 아니었다. 그저 담담히 어느 곳을 갔고, 그곳을 여행하는 동안의 감정이 어땠고,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이란 무엇이며, 여행 때 즐겨찾는 책과 음악, 영화는 무엇인지 찬찬히 일러주는 스타일이었다. 오히려 과장되지 않은 그 무심한 투가 좋아서, 여행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졌다. 특히 교토는 읽는 동안 다시 가고 싶어졌는데, 그중의 제일은 새벽의 기요미즈데라 이야기. 



책에서 기억에 남는 게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해보니 별것 없더라와 "해도 별것 없대"는 다르다고 한 것이다. '내 안으로 여행하기'를 잘하려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한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여행을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인지, 남들이 가니까 따라가는 것인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안 가던 여행을 몇 번 떠나기 시작하면서, 굳이 원하지도 않으면서 남들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물론, 지금이야 여행이 확실하게 시야를 넓히고, 그렇게 쌓은 경험이 또 몇 년을 회상하면서 즐길 수 있을 추억이 된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저 문장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여행'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고, 그저 나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시간이라는 얘기를 잘 들려준 것 같다. 글도 재밌고, 몇몇 여행의 노하우는 앞으로 잘 써먹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과하게 여행을 찬양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떠나고 싶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