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벨: 인형의 주인》 : 탈리타 베이트먼, 룰루 윌슨, 스테파니 시그만
오랜만에 친구 L이 카톡을 해왔다. 우리는 평소에 시도 때도 없이 이야길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저 안부가 궁금할 때 잘 지내는지 묻고, 그러다 약속을 잡고, 얼굴을 보고 나면 또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런 L이 잘 지내느냐며, 영화를 같이 보지 않겠냐고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콜'했고, 같이 보자는 영화가 <애나벨>이어서 한 번 더 '콜'했다.
실은 <애나벨>을 보기 전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이 영화 얘기를 했다. '그거 봤어요, 애나벨?'이라거나, '무서우니까 꼭 봐'라거나. 이제는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무서웠다'고 잔뜩 써둔 내 옛날 <컨저링> 리뷰를 보고, 조만간 이 영화를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뭐 그런 얘기.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그곳에 인형을 제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과 함께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우연한 사고로 딸을 잃게 된다. 그로부터 12년 후, 부부만 남은 넓은 집에, 고아원 소녀들과 수녀가 함께 살게 된다. 남자는 손님들을 2층에서 지내게 하고, 딸의 방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런 충고는 무시되기 마련이고, 결국 그날 밤부터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find me'라고 적힌 쪽지가 난데 없이 날아든다거나, 인형이 살아 있는 듯 움직인다거나, 알 수 없는 힘으로 2층에서 1층으로 소녀를 내동댕이 친다거나.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싶을 때, 부부는 짚이는 게 있는 듯 털어놓기 시작한다. 딸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어떤 존재도 받아들이겠다고 기도했고, 그만 사악한 존재를 불러들였다고. 교회의 도움으로 악령을 인형에 봉인해두었는데, 결국 돌아와버렸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줄거리를 보고 올 걸'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대단히 예측불가능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뭐라도 실마리라도 알면 덜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저 인형이 나온다고만 알았지, 소녀들이 주인공인 줄도 하나도 몰랐으니까. 무서운 것 하나 없이 무섭다던 이 영화는,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주자고 작정이라도 한 듯했다. 괴기한 인형, 온몸이 꺾이는 잔인한 묘사, 신경을 거스르는 무서운 음향, 거기에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지 알고서 만든 장면들처럼(도망치려 해도 속도를 낼 수 없다거나, 시야가 제한된 공간에 있다거나..).
애들이 연기하는 건데 얼마나 무섭겠어, 라고 했으나 장면마다 눈을 질끈 감기 일쑤였고, 온몸을 들썩이다 먹던 나초를 두어 번 엎었고, 소리 때문인가 싶어서 귀를 막았더니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 때문에 더 긴장됐다. 분명 여기서 놀라게 하겠지, 라고 마음을 부여잡아도 계속 그대로 당해버렸다. 정작 같이 봤던 L은 생각보다 뻔해서 덤덤했다고 했지만 말이다. 상영 시간 내내 충분히 즐겨서, 보길 잘했다 싶었던 영화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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