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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출판일상

[편집자노트] 제목을 짓는다는 것

[편집자노트] 제목을 짓는다는 것

 

 

책을 편집하는 일만이 아니라 책의 제목을 짓는다는 것은 편집자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는 일 중 하나다. 왜냐면, 책 제목 하나로 책의 느낌이 크게 바뀌니까. 입에 착 달라붙는지도 생각해봐야 하고, 원고랑 맞는지, 디자인적으로도 보기 좋은지 등등 고려할 것도 많다. 1~3교까지는 가제로 원고를 진행해 나가는데, 마감 막바지에 이르면 '제목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으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항상 '대박이야!'라고 할 만한 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원고의 전체 분위기를 알고 있다는 게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문장의 분위기, 주제에 얽매여 틀 속에 단단히 갇혀 독자들이 신선해 할 만한 단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세계문화유산>과 관련한 신간을 맡았다. 책을 맡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사도서를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의 책들은 '아동학습', '전문서' 정도로 갈렸다. 이 책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여행기를 엮어 어려운 전문서 느낌을 다소 줄인 그 중간에 위치한 책이다. 외국 저자의 번역서가 아닌, 국내 저자가 전 세계를 돌면서 세계문화유산을 직접 소개한다는 것이 포인트인 책이었다. '학습'이나 '전문서'로 뺄 경우 제목들은 딱딱했다. 조금 다른 느낌을 잡고 싶어 아마존 재팬도 한번 들여다봤다. 그래서 나온 후보군이 아래다.

 

세계의 끝에서 58

나는 기적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위대한 유산

소중한, 너무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을 여행하는 법

 

하지만, 다들 약하다는 반응이었다. 주제 자체가 강하니, 어렵게 느껴지는 '세계문화유산'의 느낌을 지워내고 잔잔하게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세계문화유산' 주제를 강하게 살려야 한다고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나왔다. 내부에서 의견을 묻고 다녀서 생긴 제목의 후보군이 또, 아래다.

 

세계로 문화로

세상이 깜짝 놀란 세계문화유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문화유산

당신이 몰랐던 세계문화유산

베스트 오브 베스트 세계문화유산

세계 최고 여행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그리고 결국엔, <세계 최고 여행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취향하곤 달라도, 오히려 단조로워 임팩트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장 주제를 잘 드러낸 제목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제목 짓는 일은 제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