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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

도쿄, 하라주쿠 레드락(Red Rock)

도쿄, 하라주쿠 레드락(Red Rock)

 

 

메인이었던 도쿄아트북페어를 떠나서, 이날의 첫끼를 먹으러 이동했다. 오는 길도 좋았지만, 가는 길도 완전 예술이었다. 이곳의 느긋한 분위기를 더했던 건 아기 유모차를 끄는 아저씨, 벤치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는 남정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여행자의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걷고 있는데, 느긋한 이곳과는 안 어울리게 사람들이 늘어선 게 보였다. 바로 Shake Shack이었. 이젠 우리나라에도 생긴, 뉴욕 햄버거 체인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래봤자 고작 햄버거 아니냔 생각과 얼마나 맛있길래 라는 호기심이 교차했지만, 누군가 먹겠냐고 물으면 절레절레 흔들고 싶었다. 그러고서 우리가 찾아간 곳이 어디냐면.... 

 

 

 

 

 

바로 하라주쿠 맛집으로 소문났다는, 도쿄에 오면 누구나 한 번 먹으러 온다는 그곳, 레드락이다. 도쿄여행을 하러 오기 전에 먹을 만한 게 없나 찾아보면서 가장 눈길이 갔던 곳이었다. 사람들이 그야말로 미친듯이 많다는 하라주쿠가 무서웠지만, 스테이크동이 넘나 먹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레드락을 찾아가는데 입구를 넘어서 저 멀리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입구를 봤는데도 지나쳐가야 하는 심정이란. 하필 점심시간대에 맞춰왔고, 비도 오고, 줄도 길고, 구두는 신어가지고 발은 아파 죽겠고, 지나가는 일본인들마저 '여긴 뭔데 이렇게 있어?'하는 걸 보면서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하는 현타도 오고.. 그렇게 1시간을 기다렸다. 뭘 먹자고 이렇게 기다린 적이 없었는데 나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걸까.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 찍기랑 블로그 뒤지기밖에 없었다. 사진은 줄이 조금씩 줄어들면 하나씩 찍어댔고, 블로그는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데 썼다. 이곳의 대표 메뉴가 로스트비프동과 스테이크동이었는데 이렇게 기다린 만큼 메뉴를 실패하면 정말 울고 싶을 것 같았다. 계속 뒤지고 뒤져도 고민만 깊어질 뿐이었다. 그러다 또 다른 고민이 생겼는데 큰 걸 먹느냐 작은 걸 먹느냐 였다. 그사이 줄이 줄어들었는데, 입구의 소머리가 보이는 곳에 가면 나름 먹을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즐거워진다.  

 

 

결국 앞선 나의 고민은 자판기 앞에서야 끝이 났다. 작은 스테이크동으로 시킨 것이다(950엔).  

 

 

티켓을 뽑고선 직원이 몇 명이냐고 물어봤고, 4명이라 답한 후 얼마 안 있어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작은 규모인 줄 알았는데 폭은 좁지만 길게 늘어진 형태의 공간이었다. 블로그들의 사진으로 보기엔 조명도 어둡고, 좀 작아보여서, 1시간을 기다리고 빨리 먹어줘야 할 것 같았는데 나름 느긋하게, 적당히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간격으로 먹을 수 있었다. 긴 시간을 들여 의자에 앉아, 메뉴를 시키고 나니 웃음만 났다. 뭔가 (정신) 승리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말야, 1시간 전부터 기다려서 지금은 이렇게 앉아 있다구! 하는.

 

 

기다린 게 허무하다 싶게 조금 있으니 엄청 빨리 음식이 나왔다. 손님이 하도 많으니, 그걸 감당해내려면 이 정도의 스피드가 필요하겠지. 음식이 나오기 전만 해도 머릿속에선 '맛있을까, 맛있을까, 맛있을까' 이 생각밖엔 없었다. 그랬는데 기다렸던 스테이크동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이건 진짜 맛있겠어'라는 강한 믿음으로 바뀌었달까. 그토록 기다렸던 스테이크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는 순간, 촉촉하면서 야들야들하고, 두터운 식감이 막 느껴졌다. 사실 스테이크+밥+상추+소스가 끝인 건데도 맛있었다. 그렇다고 뭐, 못 먹으면 죽을맛까진 아니고 기다릴 만했다, 는 정도다(맛은 충분히 예측할 만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맛, 그맛이다).

 

 

팀장님만 여기서 큰 걸 시켰는데, 내가 음식을 먹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 "큰 거 시킬 걸"이었다. 여기서 ㅇㅈ씨만 로스트비프동을 시켜서, 한입 먹어봤는데 개인적으론 스테이크동이 더 좋았다. 두툼한 고기를 씹는 느낌이 더 좋아서. 근데 ㅇㅈ씨랑 ㅇㅅ씨는 로스트비프가 더 부드러워서 좋다고 했으니,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갈리는 듯싶다. 1시간을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허겁지겁 눈앞의 음식을 다 먹은 게 10분이었던 것 같다. 원래 먹는 속도가 빠른데 첫끼여서 더 빠르기도 했고, 이곳엔 이것 외엔 다른 반찬이 없었다. 나의 시간을 보상받으려면 더 있어줘야 할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