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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

도쿄, 메이지신궁, 나카메구로

도쿄, 메이지신궁, 나카메구로

 

 

1시간을 기다리고, 10분만에 식사를 끝내버린 레드락을 떠나고, 다음 행선지는 메이지신궁이었다. 하지만 여길 가기에 앞서 급 다른 곳을 들르게 되었으니, 바로 ABC마트였다. 집에 있는 운동화가 어딘지 좀 불편하고, 오히려 구두가 편해서 구두만 갖고 왔다가 X고생을 넘나 한 뒤라 급하게 운동화를 사기로 한 것이다. 정말 빨리(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다른 사람은 아니었을까?) 신발을 사서 갈아 신었다. 우산, ABC마트백, 에코백.. 짐이 너무 많았지만 구두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정말 살 것 같았다. 휴=3    

 

 

번잡한 하라주쿠와는 달리 도보로도 갈 수 있는 메이진신궁은 비교적 한가했다. 사실 이곳은 이번 여행에서 내가 꽤 기대했던 곳이었다. 아사쿠사는 지난번에 갔던 곳이었고, 그 외 들렀던 곳들은 딱히 명소라고 하기엔 조금 마니아틱한 면이 있고, 대중적인 관광명소로는 처음이다시피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가고 싶어 한 건 같이 책을 작업했던 쏠트작가님의 사진을 보고서다. 초반 원고작업엔 있었지만 책에는 결국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때 찍은 도리이 사진을 보고, 도쿄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하면서 가보고 싶었었다. 사실 도리이가 있는 곳이 메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입구였다. 내가 보고 싶은 건 딱 여기였는데, 초반에 목표를 달성해버렸고, 나머진 여유롭게 감상하기로 했다.  

 

 

입구만 보는 걸 목표로 해서인지 신궁이 이렇게 넓고, 한산하고, 푸르른 곳인지 몰랐다. 길 폭이 상당히 넓은 곳을 산책로처럼 걸으면 옆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힌 벽(?)을 볼 수 있고, 또다시 도리이를 만나, 손을 씻는 곳까지 이른다. 우리나라에선 절 같은 곳을 가는 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돈데, 일본에만 오면 이런 곳은 꼭 빠지지 않는 코스인 것 같다.

 

손 씻는 곳을 지나 메인 문을 지나면, 넓은 광장이라 그래야 될까.. 그런 곳이 등장한다. 꽤 많은 길을 걸으면서 왔는데 가파르지 않아서 편하게 왔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산뜻한 푸르름을 느낄 수 있어 좋았을 텐데, 비가 와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좀 아쉬웠다. 아사쿠사에서 봤던 비슷한 것들이 이곳에도 있다. 하지만 아사쿠사가 '빨강'의 느낌이 강했더라면, 이곳은 '초록'의 느낌이 강한, 좀 더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니 아사쿠사의 나카미세도리처럼 장사를 하는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이미 내 목적은 초반에 달성해서 이곳에 왔을 때쯤엔 사실 감흥이 덜 했다. 넓긴 한데.. 막 다른 관광객들처럼 안을 들여다보고 할 정도의 흥미는 없었달까. 으흠, 여기가 메이지신궁이야, 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살짝 둘러보다가 근처에 의자가 있어서 쉬는 데에 시간을 할애했다. 아침부터 미친듯이 돌아다닌 결과였다.

 

 

이곳을 벗어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 또 하나는 앞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후자를 선택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황량한 길이었다.

 

 

구글맵을 찾고서 이쪽 길을 택한 거였는데, 우리 말고는 이 길로 가는 관광객이 하나도 없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부슬부슬 아님), 주변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은 하나도 없고, 간혹 까마귀 소리만 울려대서 공포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여기서 뭔일이 난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그런 길이었다. 그치만, 이런 길을 걸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 여행에서 이런 곳을 언제 걸어보겠나, 라는 생각과 정말이지 운동화 잘 샀다, 라는 생각이 걷는 내내 맴돌았다 

 

 

그래도 그 으스스한 길을 계속 걸으니 어느덧 시내가 나왔고, 그다음엔 역으로 갈 수 있었다(사실 우리가 택했던 길에서 원래 의도했던 역이 있었는데, 잘못 들어서 다른 역으로 빠져나왔다). 역으로 가는 길엔 아기자기한 곳이 있어 예쁘다, 하고 가서 보면 '세탁소', '부동산' 같은 거였다. 여긴 뭐 이런 것도 예뻐. 근데 역을 가니까, 역은 더 예뻤다.

우리가 역에 도착하기 전, 시내로 빠져나왔을 때 사실 팀장님은 나카메구로가 아닌, 시부야를 다녀오겠다며 우리와 헤어졌다(후에 꼬치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패스했다. 팀장님 죄송해요. 죽는 줄 알았거든요).  

 

 

갈아타고, 갈아타고 해서 나카메구로에 도착했다. 여기에 도착하기 전까진 너무 힘들어서 표정도 사라지는 느낌이었고, 다리도 풀렸고, 말수도 줄어갔다. 이럴 바엔 숙소로 돌아갈까, 싶었는데 에그를 같이 쓰고 있어서 따라갔다. 근데 그렇게 힘들어 죽겠던 마음이, 나카메구로를 도착하자 싹 사라졌다. 특히, 이곳 포토스폿에 선 순간 잘왔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기가 벚꽃 시즌에 벚꽃잎이 강위에 흘러서 넘실대는 바로 그곳인데, 아직까지 벚꽃시즌엔 한번도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서 나중엔 그때에 맞춰서 여길 와봐야지, 싶었다.

 

 

나카메구로를 많이 들었었는데, 부내가 진동하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때쯤엔 비도 살짝밖에 오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도 너무 예뻐서 사진 찍는 맛도 나는데, 비가 내리는 중이라 더 쨍하게 나와서 뿌듯.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만난 곳이어서 그런가 너무 좋았다. 이날 이곳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도 좋았고, 근처 츠타야서점까지. 별 다섯 개가 모자란, 도쿄에 또 오게 된다면, 꼭 오고 싶은 동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