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온전히 나답게》: 한수희

《온전히 나답게》 : 한수희

 

 

<어라운드>, <킨포크> 같은 류의 잡지가 있다. 한때 열풍이라 싶을 정도로 출판시장과 독자들을 홀렸고, 지금도 그런 류(예쁘고, 느긋하고, 일상적이고, 감상적인)의 책들이 많이 나온다. 대체 왜 인기가 있는 걸까, 싶어서 찾아 읽어본 적도 있다. 사진은 확실히 예뻤지만 글은 글쎄. 딱히 재밌다거나 공감이 된다거나 하지 않았다. 뭐랄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감성에만 허우적거리는, 감성팔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매거진 <어라운드>의 칼럼니스트가 쓴 책이라니. 일단 의심이 들었다. 이것도 표지만 내 취향으로 만들어놓고, 내용은 엉망일지 몰라, 하는. 일단 한 편을 읽고 그게 마음에 들면 사야겠다, 하고 읽었다.  

 

 

목차가 있는 페이지를 펼쳐서 손으로 마음에 드는 제목을 찾아.. 읽진 않았고, 그냥 휘리릭 넘기다가 어떤 글에 멈췄다. 그건 '나의 책 구입법'이라는 글이었다. 그 한 편만으로 이 책은 꼭 사야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도서관을 좋아한다는 것, 도서관 책장 앞에 서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것, 좋아하는 작가가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헬렌 필딩이라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와 스티븐 킹의 책을 산다는 것,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모으는 재미를 아는 것 등 1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글에서 나의 취향이 언뜻 보였기 때문이다(100%는 아니지만, 관심의 범주와 같았다). 이 글만으로 어느 정도 책은 읽었으되, 뻐기지 않고, 그러면서 적당히 대중적인, 현실의 끈을 놓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 괜찮은 거 같아, 라는 마음이 들고, 천천히 책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부제도 평소 내가 동경하는 그것과 맞닿은 듯 보였고, 목차의 제목들도 작가만의 감성이 느껴졌다. 오글거리지 않고 담백하되, 품위있는. 사실 이책을 구입하던 날 무심코 서점에 들어갔던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퇴사도 앞두었고, 듣고 있는 학원 수업도 따라가기에 급급했고, 안 좋은 소식도 들었고, 뭔가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마음을 좋은 글로 정화하고 싶었다. 책을 끌어안고, 그날부터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을수록 비관적인 그러나 결론은 진취적인, 소심하지만 대범한, 적당한 욕심이 있는 그녀가 좋아졌다. 그리고 읽는 동안엔 생각대로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었고, 그녀는 글을 두고 시시콜콜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게 좋아서 읽는 게 아까웠다. 아, 이제 읽을 글이 없어지는 구나, 하는 아쉬움. 그래서 책에 언급된 블로그도 들어가서 읽고, 그녀의 또 다른 책을 기웃거리고, 인터뷰 기사까지 읽었다. 작가가 나랑 딱 10살 차이라서, 겪어본 자가 해줄 수 있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런 게 여기엔 있다.

 

 

 

58p

나도 그런 기분을 간절히 원한다. 산뜻한 기분, 그렇다. 내 인생에 없는 것은 그런 산뜻한 기분이다. 언제나 기한에 쫓기고 마감에 쫓긴다. 나는 지금껏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떠밀리듯이. 쫓기듯이. 마지못해서.

 

104p

소탈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멋스럽지만 뽐내지 않고,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인,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인.

어쩌면 그건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인 것과 동시에,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건 연결되어 있다.

 

250p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자주 쓰는 것을 경계한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행복은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표로 삼을 만한 것도 아니다. 행복은 살다 보면 우연히 떨어지는 보너스 같은 것이다. 행복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