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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짐승의 성》 : 혼다 테쓰야

짐승의 성》 : 혼다 테쓰야

 

 

<스트로베리 나이트>, <감염유희> 등으로 이어지는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혼다 테쓰야. 그의 작품은 일드로도 만들어져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 <짐승의 성>. 띠지엔 '인간성의 심연을 다루는 잔인한 일본 미스터리'라는 말이 적혀 있고, 알고 보니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던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사건'에서 모티브를 딴 실화소설이란다. 추리소설의 특성상 실화를 모티브로 딴 소설은 많은데, 특히 이 책에 흥미가 더 갔던 건, 일본 내에서도 경악스러운 사건이라 언론보도 제한까지 걸렸다는 것. 대체 얼마나 심각하기에 이럴까, 하고 책장을 하나씩 넘기는 순간, 이 책의 선정성+폭력성+잔학성에 부들부들 몸이 떨리고, 도저히 인간의 짓이라고는 볼 수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 이게 실화라니.

 

 

어느 날 경찰 앞에 나타난 소녀 마야. 그녀는 선코트마치다 403호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고백한다. 자신이 폭행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라는 여자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곧바로 달려간 현장엔 '요시오'는 사라지고 '아쓰코'만이 있고, 그집 욕실엔 무려 5명의 DNA가 검출된다.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둠의 공간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경찰들은 마야와 아쓰코를 끊임없이 신문한다. 두 여자의 엇갈리는 진술 속 하나씩 맞춰지는 충격의 진실. 선코트마치다 403호, 그곳에선 '요시오'라는 남자에게 세뇌당해 딸이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가 아들을 죽이는 지옥이 펼쳐졌음이 밝혀진다.

한편, 이것과 별개로 신고와 연인 세이코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세이코와 오붓하게 살던 어느 날 등장한 그녀의 아버지 사부로. 그는 서서히 그들의 집을 잠식해가고수상히 여긴 신고는 그를 쫓는다. 사부로는 매일 집을 나가 '선코트마치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급기야 그의 가방에선 피가 담긴 통까지 발견된다. 요시오는 어디 있으며, 신고에 집에 나타난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형사들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은 혼다 테쓰야는 <짐승의 성>에서도 그의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시마모토와 구조, 기와다 같은 인물을 통해 대변되는 형사들의 의식과 절차는 꽤 구체적이다. 피의자와의 신문, 몽타주 수소문, 승진, 잠입수사 등등. 눈앞에서 형사들이 뛰어다니는 듯하다.

거기에 모티브가 된 '감금사건'의 피해자들의 진술은 소름끼치는 정도를 넘어 역겨울 정도다. 감전, 폭행, 살해, 시체해체... 개인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소설을 좋아하는데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분이 너무 나빠져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분명히 소설로서 재미가 있는데도, 인간으로서 이것을 흥미로만 본다는 것은 어쩐지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어떤 독자는 이 책을 두고 별 하나를 주었을 정도다. (졸작이 아니라 너무 그로테스크해서 다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끔찍한 사건 속에서도, 형사들의 진심이라든가, 애틋한 연인의 코드는 상당히 훌륭하다. 여운도 크다. 다만, 그 지옥같은 날들의 일상이 그저 두 여인의 진술로만 끝이 난다는 것이다.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하므로 그만)

 

 

<짐승의 성>을 선물받고 반가워서 집에 있던 혼다 테쓰야의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함께 찍어봤다. '딸기밤'이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잘 만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책이지만, 몰입도나, 긴장감, 惡은 <짐승의 성> 쪽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맘에 든다. 아주 오랜만에 나온 신작인데, 잘 나와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