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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7년의 밤》 : 정유정

《7년의 밤》 : 정유정



2011년에 출간된 <7년의 밤>을 읽는 데에는 꼬박 7년이 걸렸다. 대단한 소설이라는 것도, 내가 좋아할 장르라는 것도 지인들의 입을 통해 많이 들었지만 딱 끌리진 않았다. 이것보다는 더 읽고 싶은 게 많았고,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모두 읽은 책을 뒤늦게 따라가면서 읽는 게 어쩐지 내게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고집으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는데, SY가 몇 차례의 추천을 해준 것도 모자라, 아예 빌려가라며 내어주기에 결국 읽기로 했다. 



<7년의 밤>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통해 '교통사고를 통해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라는 큰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펼쳐졌다.  


전직 야구선수인 최현수와 아내 강은주는 중산층에 진입하기 위해 아파트를 구입한다. 전 재산을 탈탈 털고,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그 집에 들어기 위해선 3년 동안 지방 근무와 사택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이사를 앞둔 어느 날 현수는 아내 은주의 성화에 못 이겨 사택이 있는 세령마을로 내려오는데, 이미 술에 거하게 취한 상태다. 술만 마시면 운전대를 잡는 버릇으로, 그날도 음주운전을 하다 여자아이(세령)를 치어버린다. 틀림없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때 자그마한 입에서 "아빠"하는 소리가 나고, 그는 놀라서 그만 왼손으로 목을 비틀어버린다. 그리고 세령마을의 세령호에 아이를 던진다. 그에겐 지켜야 할 삶과 가족(강은주, 아들 최서원)이 있었다. 그후로 사택으로 이사한 그에겐 끔찍한 밤이 찾아온다. 

한편, 현수가 치어버린 세령은 의사인 오영제와 아내 문하영의 딸이다. 오영제의 '교정'에 질린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승소한다. 오영제가 못 견디게 열 받은 그날 세령은 규칙을 어기고, 오영제의 교정을 받는다. 아빠의 무자비한 폭행을 피해 달아난 세령이 맞닥뜨린 것은 죽음이었다. 자기 것을 빼앗긴 분노로 가득한 영제는 살인범을 찾아내고, 범인 자신과 그가 끔찍히 사랑하는 아들을 한꺼번에 죽일 계획을 세운다. 첫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영제는 현수가 사형집행을 당하는 날을 기다려 7년 동안 그들을 쫓는다. 



결국 딸의 복수를 꿈꾸는 남자와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남자, 피해자와 가해자가 얽히고설키는 이 증오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게 되는지가 이 소설의 묘미다. 평소와 다르게 줄거리를 구구절절하게 쓴 것은 그토록 이 소설이 전하는 바가 많았고, 그 전반에 깔려 있는 메시지를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수가 그날 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영제가 경찰이 아닌 제 손으로 복수의 칼을 갈았던 것도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세령마을 지도가 딸려 있고, 그다음엔 아주 구체적인 묘사들이 연이어 날아든다. 이게 이토록 중요한 내용인가, 본론은 빨리 언제 넘어가는가 아득했다. 하지만 그 장황한 묘사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자세한 묘사들로 등장인물은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했다. 책을 읽을 때면 주인공 이름 외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7년의 밤>은 최현수, 강은주, 최서원, 오영제, 문하영, 오세령, 안승환 같은 인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그려졌다. 

더욱이 소설의 배경인 사택과 세령마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때때로 소설 속 묘사는 시 같았다. 현수가 죄책감으로 매일밤을 허우적거릴 때, 그에게 아들의 존재가 "초라한 삶을 견디게 하는 달빛이었다"고 할 땐 그 절절함이 훅 하고 들어왔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까, 하고 감탄했다. 압도적이었다. 

서사 역시 대단했다. 현재와 과거, 시점을 넘나들면서 계속해서 활자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였다. 큰 줄거리인 복수극도 그렇지만 잔가지처럼 하나씩 긁어대는 저자의 문제의식도 읽을 수 있었다. 중산층 진입, 父의 트라우마, 사형제도, 가해자의 가족 등. 마지막에 신문기자들 앞을 서원이 걸어가는 장면은 그의 앞에 놓인 또 다른 현실을 말하는 듯해서 울컥했다. 말로만 듣던 정유정 작가를 실감했다.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었지만, 아쉬웠던 건 최현수. 면허취소에 잦은 음주운전, 그로 인한 살인은 필연적이다. 게다가 목표를 상실한 가장이라니.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 뭉클하다가도, 그의 행동을 생각하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몰입도가 낮아졌다. 이건 다른 얘긴데, 영화 캐스팅은 정말 못마땅하다. 소설 속에 묘사된 등장인물과 전혀 매치가 안 된다. 캐스팅 누가 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