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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출판일상

[편집자노트] 어차피 살 사람은 산다

[편집자노트] 어차피 살 사람은 산다



한때 한겨레에서 주관하는 1인출판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고작 경력이 편집자로 2년인가 3년인가 됐을 즈음이었는데, 이런 강의를 들은 걸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변명하자면, 어차피 출판사를 차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고, 관심이 있으니 가볍게 들어나 보자 했던 것 같다. 그러니 곧 책을 출간하겠다는 의지가 가득찬 사람들(원고를 직접 쓰고 있다거나, 계약한 아이템이 있다거나) 틈에서 나이도 어린 편이었던 나는 '쟨 뭐지?' 싶었겠다 라는 생각이 이제와서 든다. 


그때의 강의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조곤조곤 진행되었다(강의하시는 모 출판사의 대표님이 약간 수줍어하셨다). 4주짜리 짧은 강의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이론적으로 얻어가는 게 많았다. 종이의 판, 마케팅의 방법, 출판사와 서점의 공급량, 기획아이템 등등. 그런 가운데 몇 가지 기억나는 게 있는데 하나는 강의 첫날, 들었던 말이다. 


그말은 즉슨 "출판사 차리려고요? 하지 마세요"였다. 업계에서 조금만 눈팅하면 자주 볼 수 있는 말이었기에, 그렇게 충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출판창업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에게, 첫 마디가 '하지 마세요'라는 건 예상 외였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말. "책을 팔려고 광고를 하는데, 광고를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어차피 살 사람이 조금 더 빨리 사는 수준에 불과해요. 판매량을 보면 그렇게 차이가 없어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책을 만들 땐 타깃독자가 설정되어 있고, 그 독자들은 광고가 없이도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결국엔 닿게 되고, 산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종종 내가 어떤 책을 접할 때 곧잘 생각이 난다. 한번 눈에 띄었지만 당장 다른 읽을 거리가 있으니 좀 나중에, 라고 생각했던 책을 결국엔 읽게 될 때. 어차피 이 책은 내가 읽을 책이었어, 라고 생각하면서 강의에서 들었던 게 맞네, 라고 끄덕인다. 왜 이 얘기를 꺼냈냐면, 요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년 이맘때쯤 나왔는데, 늘 산뜻한 색감의 표지와 대비되는 자극적인 제목을 보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감히). 그러다 결국 어떤 경로로든 읽게 된 것이다. 실은 눈독 들이던 책을 결국 읽게 됐을 뿐이라는, 별 얘기 아닌 걸 길게 늘여놓은 건데, 암튼. 어차피 살 사람은 사고, 어차피 읽을 사람은 읽는다, 라는 걸 시간이 지나서도 실감하고 있어서 남겨두려고 써봤다. 그나저나 <죽여 마땅한 사람들> 꿀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