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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최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었다. 대학교 때 수업에서 줄창 들었던 작가와 소설을 이제서야 읽다니, 나도 나다. 얇디얇은 이 책엔 단편 소설 <인간 실격>과 <직소>, 그리고 작가의 생애와 더불어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내용이 길고, 어려운 건 읽지 잘 못 읽는 편인데,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심리를 감탄할 만큼 세밀하게 묘사해 내서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이 유명한 소설 <인간 실격>은 너무 순수해서 인간의 사회의 규범을 따르지 못하고 타락하고 만 요조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본심을 숨긴 채 '익살꾼'을 자처하며 살던 그는 번번이 좌절하다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자살을 기도했던 여인은 죽고, 혼자만 살아남은 탓에 자살방조죄라는 오명과 함께 가족들의 신뢰를 잃고 만다. 부유한 집안의 원조마저 끊기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 그는 계속된 방황으로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급기야 마약에까지 손을 대며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남의 비위를 맞추며 '익살꾼'으로 살아온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존재가 타인의 눈에 더 이상 온전치 않은 인간, 즉 인간 실격자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 실격>은 소설 그 자체로도 뛰어난 작품이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사소설 격인 소설로 더 주목받는다. 하지만 실제와 생애와 동일하지 않고, 곳곳에 허구가 섞여 자기 해명의 소설로도 불린다. 뒷부분에 더해진 작품해설과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를 곱씹으면 이 소설의 재미가 한층 배가 된다(물론, 자의적인 해석을 해칠 수도 있는데, 나는 공론으로 정해진 해설을 좀 더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라는 존재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실은 이 책에 <인간 실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직소>라는 단편도 딸려 있어서 당황했다. 무슨 내용인가, 하고 찬찬히 읽어보니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유다의 나약한 심리 묘사와 마치 눈앞에서 이야길 듣고 있는 것 같은 현장감 넘치는 문체다. 예수를 흠모하지만, 너무 나약해서 쉽게 상처받고, 거리낌없이 배신하게 되는 그 심리의 간극이 돋보인다. 중간중간 울먹이면서 읍소하다가 마지막에 굳게 결심한 듯 "나는 조금도 울지 않아. 나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아. 처음부터 티끌만큼도 사랑하지 않았어. 저는 쩨쩨한 장사꾼입니다. 예,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 이름은 장사꾼 유다. 헤헤 가롯 유다 입니다."로 돌변하는 모습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인간 실격>, <직소> 모두 왜 다자이 오사무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작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