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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나를, 의심한다》 - 강세형

《나를, 의심한다》 - 강세형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가 있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고를 수 있는 작가 중 한 명이 강세형 작가다. 에세이를 그리 많이 읽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당당히 고를 수 있다는 작가를 만난 건 행운이 아닌가 싶다.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를 통해서였다. 라디오 작가여서 그런지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제법 읽을 만했다. 거기에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까지 더해지니, 고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어려울 때 읽기 좋았다. 


이후 그녀의 에세이는 몇 권 더 나왔다. 2015년 <나를, 의심한다>, 2017년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가 그것이다(읽은 책 제외). 분명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얼른 거들떠볼 법도 하건만, 나는 이 책들을 오래 묵혀두었다. 언젠가 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선지 다음에, 다음에- 하고 밀어두었다. 그렇게 지나친 책 중 하나인 <나를, 의심한다>를 이번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온라인 서점 미리보기로 몇 번을 들춰볼 때마다 느꼈던 건 기존 스타일과 다르다는 것. 그 변신엔 압도적으로 호감 평이 많았지만 어째 경고를 하는 평들도 더러 있었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책이라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다르길래? 작은 궁금증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기 때문에, 겉표지는 벗겨져 있었다. 작가소개도, 앞뒤표지 문구도 없이, 그러니까 책에 대한 일절 소개도 없이 읽으니 구성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기존 에세이 같은 글(검정색 글자)이 나오다가도 흡사 소설 같은 글(보라색 글자)이 나오고, 앨범에 내레이션을 입혔다는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글(회색 페이지)이 등장한다. 작가 자신이 쓴 일들이 실제 자신이 겪었던 일이 맞는지, 아니면 그조차도 사실 없었던 일인 건지 알 수 없다는 묘한 프롤로그 이후로 이렇게 글이 펼쳐진다. 


정말, 기존작들을 기대하고 본다면 호불호가 갈릴 만했다. 나만 해도 낯설었다. 전체 디자인이나, 글맛은 더 좋아졌는데도 어쩐지 낯설었다. 특히 보라색의 글이 그랬는데, 실제 겪은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글들로, 일부러 실제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어두운 글을 쓰는 거야, 하고 삐딱하게 바라보다가도 잘 쓴 문장에 나도 모르게 끄덕거리며 읽게 된다. 그래, 이만큼 쓰는 작가가 요새 없지 하면서. 생각했던 에세이와는 좀 결이 달랐지만, 강세형은 강세형이다. 




"그런데 어쩐지 나도 선배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어쩐지 나도 요즘 재밌는 영화나 책이 통 없어서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열광하게 만드는, 밤을 꼴딱 새게 만드는 다 보고 난 다음에도 누굴 만나든 그 얘기만 하게 되는, 그러니까 나로 하여금 반하게 만든 책이나 영화가 요즘 통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