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강릉 :: 바다, 벚꽃, 만나도토리임자탕, 여고시절

지난 주말, 일이 생겨서 급하게 강릉으로 내려가야 했다. 혹여 차가 막힐까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씻고, 강릉에 도착. 3월 달에도 눈이 내렸다고 했던 강릉이었고, 서울도 아직은 찬 기운이 있으니 아직 봄은 이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강릉은 벌써 봄. 날씨도 따뜻하고, 곳곳에 벚꽃도 보였다. 이것 말고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바다.

시댁이 강릉이라 내려올 때면 일정에 맞추는 코스를 돌게 된다. 명절이니 어르신들을 뵙는다거나 하는 일. 그러다 보면 강릉까지 왔는데 고속도로만 실컷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또 와서 보면 되지, 하는 거다. 외지인인 나는 '강릉에선 바다지'라는 느낌이면, 토박이인 임뚱에게 강릉 바다는 꼭 봐야 하는 건 아닌 것. 요 몇 번 동안 강릉에 왔는데 바다를 못 봤다고 하니, 이번엔 시작부터 바다. 

 

볼일을 마치고 가는 길에 아버님께서 '바다 좀 보면서 갈 수 있게 해라'고 하셔서 덕분에 이렇게 구경을 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괜찮은 포인트에선 내려서 사진도 찍고, 가면서 어디인지 설명도 듣고(하지만 어디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 어쨌거나 새벽에 일어나서 달려올 만한 가치가 충분. 서울에서 차 타고 당일치기로 한 바퀴 돌면서 가기 정말 좋은 곳인 것 같다. 최근엔 KTX도 있고.  

 

점심은 어머님, 임뚱, 임뚱친구, 나 이렇게 넷이서 먹었다. 강릉에 내려올 때마다 어머님께서 맛있는 집을 데려가주신다. 이번에 간 곳은 '만나도토리임자탕'이라는 곳. 강릉에서 임뚱하고 둘이서 밥 뭐 먹지, 하고 고민하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한 것보다 확실히 어머님이 맛있다고 데려가주신 곳이 훨씬 낫다. 최고최고. 

요번에 먹은 건 도토리임자탕, 도토리쟁반국수, 도토리토속전. 몇 인분을 시켰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굉장히 푸짐한 한 상이었다. 기본 반찬은 무채, 동치미, 콩나물무침. 기본 반찬부터 괜찮아서 메인 메뉴를 기대했는데 맛있었다. 어머님께서 '도토리라서 속이 편안하다'고 하셨는데, 정말 먹고 나서 불편함이 없더라. 처음엔 임자탕이 뭔가 했는데, 흑임자 이런 느낌처럼 깨가 잔뜩 들어 있는 고소한 탕. 따뜻하고, 먹으면 왠지 건강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이었다. 

 

쟁반국수를 시키면 요렇게 갖은 야채와 면이 가득 나온다. 비닐장갑을 같이 주어서 임뚱이 대표로 슥슥 무쳐줬다. 도토리면인 듯 탱글탱글.

 

점심을 먹고선 집에 돌아가서 한숨을 자고, 저녁즈음 다시 밖으로 나왔다. 친구의 청첩장을 받으러 가느나 강릉역 근처도 갔는데, 저렇게 벚꽃이 엄청 피어 있었다. 올해의 벚꽃을 강릉에서 처음 보게 될 줄이야. 

 

곧 저녁이 되어서 강릉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여고시절 카레떡볶이' 집을 갔다. 몇 년 전부터 여길 오려고 했었는데, 그때마다 명절이라 문을 닫아서 한 번도 먹질 못했던 곳. 대체 몇 년만에 먹게 되는 거냐며 기쁜 마음으로 입장. 워낙 유명한 집이라 매장이 하나 있을 만도 한데, 포장마차 식으로 되어 있었다. 손님에 비해 테이블이 많지는 않아서 살짝 불편한 느낌(우리도 음식은 받았는데, 자리를 찾느라ㅜㅜ). 미리 이 집에 가기 전 누군가 사진을 찍다가 제지를 받았으며, 불친절했다는 리뷰가 있어서 쫄았는데, 생각보다 그냥 평범한 느낌의 가게였다. 물론 내가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주문한 음식과 외관만 찍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주문은 유명한 카레떡볶이랑 튀김으로 섞어서 했다. 손님이 많으니 튀김이나 떡볶이나 그때그때 요리해서 바로 나가서 신선한 느낌이었고, 튀김의 종류도 많아서 괜찮았다. 튀김은 튀김 옷도 적당하고, 두께도 두툼해서 완전 만족했고, 특히 고추튀김이 맛있었다. 떡볶이는 확실히 체인점의 느낌이 나지 않는 푸근한 맛이랄까. 소스도 진득한 느낌으로, 쌀떡볶이라 괜찮더라. 몇 년을 오매불망까지는 아니지만 실망하지는 않을 정도!  

 

서울로 돌아가기 전엔 어머님께서 추천해주신 대로 경포대를 돌면서 벚꽃 구경. 어느새 강릉의 상징이 된 것 같은 호텔도 보고, 벚꽃 보면서 사진 찍는 사람들도 보고, 벚꽃 라이트업도 실컷 봤다. 봄이구나, 했는데 고속도로 달릴 때쯤엔 갑자기 눈이 몰아쳤..

마지막이 좀 당황스러웠지만 꽉 채워서 알차게 보냈던 강릉에서의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