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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영화

《살인의 추억》 -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

최근에 뉴스에 연일 보도됐던 화성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뒤늦게 DNA로 유력 용의자로 이춘재를 특정했고, 결국 프로파일러를 동원, 범행자백까지 받아내고, 추가 범죄까지 밝혀내는 중이다. 국내 3대 미제사건 중 하나로 꼽혔던 이 사건이 주목받은 것은 범죄의 잔혹도도 그러하지만,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 주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의 공도 빼놓을 순 없겠다.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에, 대체 어떤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나 싶어 아침엔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았다. 사건의 충격만큼 2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이춘재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가정환경, 문제 없이 제대, 취업, 전과기록 없음.. 등으로 인해서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나갔다고. 사람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충격을 받고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었다. 

 

이후 <살인의 추억>과 관련된 기사가 언뜻언뜻 보였고, 혹시나 하고 넷플릭스에서 찾아보니 있길래,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고 보고 싶다는 생각에(인생에 몇 안 되는 여러 번 돌려본 영화) 감상에 들어갔다. 

 

연극 <날 보러와요>를 영화화한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라는 감독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데 발판이 된 영화. 실제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전형적인 시골형사 송강호와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주의 서울형사 김상경의 범인 추격을 다루고 있다.

 

평범했던 작은 마을에 시체가 발견된다. 하나, 둘, 셋..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지만, 범인의 단서는 하나도 없이 사건만 연달아 일어난다. 답답한 시골형사 송강호는 눈에 띄는 사람들을 잡아 자백을 강요하거나, 점집을 찾아가거나, 무턱대로 무모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찾거나 하는 비과학적 수사를 총동원한다. 과학, 서류 신봉자인 서울형사 김상경은 그런 그가 못마땅하다. 풀리지 않는 사건, 정반대의 수사방식.. 이 둘이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시간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사이, 사건의 공통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피해자들은 모두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었으며,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나오는 때에 맞춰 살해를 당했다는 것. 여경에게 함정수사를 시키기도 하고, 사건 장소를 다시 찾아가기도 하고 하지만 번번이 범인에게 농락당할 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만큼, 경찰의 무능은 점점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는 한편, 가까스로 범인에게서 탈출한 피해자를 김상경이 만나게 되고, 중요한 단서 "범인의 손이 부드러웠다"는 진술을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라디오국에 비 오는 날이 되면 <우울한 편지>를 틀어달라고 신청하는 사람을 찾게 되고, 그(박해일)를 찾아가는데..

 

평범한 얼굴, 부드러운 손, 차분한 그를 본 순간 김상경은 범인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결론은 DNA 불일치. 눈앞에 있는 놈이 범인이 맞는데, 증거가 없다. 때리고, 총도 겨눠보고 하지만 결국 그를 놓아줄 수 없는 상황.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그는 그렇게 유유히 사라진다. 

 

2003년에 개봉했던 <살인의 추억>은 언제 봐도 잘 만든 영화. 미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과 그걸 쫓던 형사들의 집념, 허탈함 등이 너무 잘 그려졌다(볼 때마다 애잔하고, 먹먹함). 전반에 흐르는 톤 다운된 분위기, 그걸 잘 살리는 낮은 음색의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음악,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과 예측할 수 없는 범인 찾기까지. 실화의 안타까움 때문에 그냥 극찬만은 할 수 없는 영화지만, 암튼 명작.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당신은 누구인가"

 

웬만한 영화가 아니기에 카피까지 기억에 남았던 영화였는데, 지금에라도 범인이 잡혀서 정말 다행이지 싶다. 누구 말처럼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남은 유족에게는 '왜, 어째서'라는 의문이 남기 때문에 그 진실규명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