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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출판일상

[편집자노트] 이런 날도 있어야지

[편집자노트] 이런 날도 있어야지



좀 늦은 이야기. 지난달에 마감을 했다. 대략 두어 달 정도를 온 신경을 사로잡았던 책이 끝난 것이다. 나는 보통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분리하지 못하는 편이라, 마감이 다가올수록 고통을 꽤 크게 받는 편이다. 일명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 그래서 스스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메일을 열지 말자'고 매번 다짐하는데, 아직까지는 소용이 없다. 끝내 메일을 열고 후회를 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도, 언제나 끝은 있기 마련이라, 어느새 인쇄소에 최종 파일을 넘기고, 무사히 책의 형태로 내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대부분은 무사히). 그렇게 내 손에 완성본이 들리면, '이제 끝났구나' 하고 기쁜 마음보다는 오히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복잡한 심경이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단어 하나와 선 모양 하나, 사진 하나에 나는 뭘 그렇게 죽자고 달려들었을까? 중간에서 내가 태클(?)을 걸지만 않았어도 작업은 더 수월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고집한 방향은 정말 맞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들이다. 


이런 마음일 때, 회사로 선물이 왔다. 미국에 있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로, 책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던 작가님이 보낸 것이다. 직원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듣고, 고마움에 간식거리를 보내주시려나 보다, 했는데 소포를 뜯고 깜짝 놀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냥 고른 게 아니라, 뭘 좋아할지 세심하게 골랐을 법한 물건들이라서. 예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는 브랜드의 초콜릿, 'Paris vs New York'을 비교한 일러스트 책, 그리고 뉴욕에서 핫하다는 독립서점의 에코백, 손으로 쓴 편지까지. 눈물까진 안 났지만, 찡-했다.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간 내가 했던 일들이 무용(無用)한 것이었으면 어떡하나, 했던 마음에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것만 같아서. 이날, 이런 맛에 편집자를 하지, 하는 마음이 꽤 오랜만에 들었던 것 같다.